첫 번째, 너와 나의 성장기
해묵은 감정과 결별할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성장한다.
너에 관한 기록을 뒤적이는 이유는 해묵은 나와 결별하기 위해서다.
방문
"선생님, 저 지금 서울에서 용원 우리집으로 가는 길인데 학교 들러 쌤한테 가도 돼요?"
진해용원중 1회 졸업생 방송반 에이스 정민제. 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친 내가 복직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카톡 문자가 왔다. 민제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가 있는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선택한 고등학교에 의아했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을 나가서 생활하고 싶은 게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 기숙사에서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날은 집보다 학교를 먼저 들렀다.
"이 녀석아, 한 달만에 오는데 집에 먼저 들렀다가 와야지. 엄마 걱정하시는데... "
"집에 먼저 가면 못 나올 것 같아서요. 헤헤."
하긴 성인이 된 오늘, 생뚱맞은 방문도 뭐 그리, 낯설지 않는 풍경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
내 첫 마디 말은 오늘도 지난 날들과 똑같다.
"그래, 홍대 거리는 잘 있냐? 음악은 원하는 대로 잘 되니?"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씨익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넌 서울 물 먹어도 변한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달라진 건 세탁물 가득 담긴 캐리어 대신 손에 주스 한 박스가 들려 있다.
"저 돈 벌어요. 시급 알바지만 월 90만원은 돼요. 히히. 학교 오기 전에 동생 만나서 밥도 사줬어요."
아직 변한 건 없다. 천진함 속에 숨어 있는 그 집요한 눈빛까지. 내가 이 아이 때 이런 눈빛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오후 수업이 없어서 방송실에서 긴 시간 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지금은 작곡과 연주 연습을 한다고 했다. 자신이 하는 음악 장르, 밴드연습실 아르바이트 사장님이 잘 챙겨준다는 얘기, 고등학교 시절 얘기, 취업 나갔던 얘기,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까지...
생활은 팍팍해 보였지만, 제법 어른 티가 났다. 내가 아는 정도의 음악 얘기와 민재가 아는 정도의 음악 얘기, 지금이 딱 대화하기 적당한 수준이어서 좋았다. 민제가 더 성장해서 나와는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또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조금 있기는 했다. 단지 선생님스러운 하나마나한 충고를 몇 가지 해 주었다. 자신의 길에 확신을 갖긴 아직 여리고 어렸다. 그래도 나의 충고들을 혼잣말로 곱씹으며 진지하게 들었다. 의지할 곳이 필요한 눈빛이 역력했다.
내 아들이 음악한다고 홍대에서 이러고 살고 있다면 나는 어땠을까 상상했다. 순간, 민제의 부모님이 궁금해졌다. 부모님에 대해 처음으로 물었다. 민제는 가족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사업 실패와 사채, 별거... 몇 개의 단어들로 대충 얼버무리며 간단하게 말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민제의 담임이 아니었다. 가정사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아프기 전의 나였다면, 부모님이 그러고 계신데 너의 불안한 미래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호되게 몰아 붙였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 나는 행복하다고 녀석의 눈빛이 말을 했다. 눈물 나게 고마운 방문이었다. (2015.9.25.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