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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26. 2023

살았다!(6)

여섯 번째, 너와 나의 성장기





개명

"선생님, 민제 이 자식 살아있어요. 어제 인스타 문자로 연락이 왔어요. 이름도 '정수종'으로 바꾼 거 같던데요."

규진이 민제 소식을 알려왔다.내 인생의 요약판이 하나 더 있었다. 혈액암 환자 정민제, 음악감독 정수종. 지독한 완벽주의자 나르시스트. 살아 있었구나, 이 녀석!  


인스타에서 정수종을 찾았다.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단다. 암 완치 판정은 내가 조금 선배다. 너나 나나 약해 보여도 결코 쉽게 넘어지지 않는 유형의 인간들이지. 집요하게 들끓는 욕망덩어리들이어서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잘 알고 가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견디는 내구성이 좋은 게 우리들의 장점이다. 가는 데까지 가보는 거다.   




'백성을 거느릴(민제)' 사람이 아니라, '나무를 지키는(수종)' 인간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구나. 부모보다 빨리 가는 걸 용서하지 못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이름. 잘 한 결정이다. 이름대로 살길 바란다. '뿌리를 이룬다(성근)'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지금 내가 이름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서야 나는 내 이름을 사랑한다.


너 같은 인간이 백성을 거느리면 백성들은 무지 피곤해진단다. 나도 내가 사람을 거느리는 유형의 인간이 아님을 알고 뿌리가 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마음을 바꾸니 내가 이미 단단한 뿌리가 내려져 있는 한 그루의 나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가 살짝 귀뜸해 줬다. 자기는 자기를 잘 못 보는 법.




언더그라운드

동건, 장진우, 깃임, 주훈, 강하, 지엔, 클라우디안, 혜화동소년, 박한, 김이네, 오후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 'Mastered by 정수종'으로 민제가, 아니 수종이 작업한 곡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모아 담았다.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으며 몰입했을 음악들을 한동안 나도 들을 것이다. 듣는 순간 알아 봤다. 너의 손을 거친 소리임을... 정수종 음악감독의 집요함과 꼼꼼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음악들이다. 음악들이 모두 좋다. 역시 내 제자다.


음악감독. 딱 너다운 일을 하고 있구나. 10여 년 전에 나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네가 갖게 될 직업을... 인생을 절반쯤 살아보면 보게 된다.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강물이 이끄는대로 실려 가다보면 결국 자기자신에게로 되돌아 오게 된다는 것을.




나는 언더그라운드 소설가가 될 것이다. 네가 소리에 한땀한땀 메이크업을 하듯이 나는 단어들을 한땀한땀 직조할 것이다. 나는 세상의 '언더그라운드'들을 사랑한다. 당신들은 절대 모르는, 나만 아는 특별한 멋진 사람들을 발굴하는 자부심을 아니? 언더그라운드들은 자유롭게 유영한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욕망을 사랑한다.


영원히 철들지 않을 지도 모를, 우리들의 미련스러운 욕망을 사랑한다. 이런 복잡한 인간들이 내 주위에 어슬렁거리다가 사리지는 이유는 나를 비추는 거울을 하늘이 내려준 것이겠지. 네가 누구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너의 벽창호와 욕망을 똑바로 보라고...




이제 민제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민제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으로 됐다.

언제 철이 들겠냐, 나쁜 놈.

민제야, 죽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다.

수종 씨, 최고의 음악감독이 될 것이라 믿어요.


너의 기록을 뒤쫓는 길은 나를 다시 발견하는 길이었다.

이제 해묵은 나의 감정과 '이별할 결심'을 한다.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

우린 조금 성장했다.  (2023.10.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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