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팔고 나니 오르네
부동산 중개사의 현란한 혓바닥 놀림에 정말 넘어가 버렸다. 그때는 몰랐다. 중개사는 나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중개만 하는 사람들이고, 그 중개를 통해 수수료를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2017년 1월 계약한 나의 첫 새집은 서울 집값이 폭등할 때, 고요한 바다처럼 3년간 잠잠하였다.
나는 완전 헛똑똑이
그렇게 여자 친구와 내가 악착같이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3억 원. 내 나이 31살이었으니 얼마나 기고만장했겠는가. 세상을 다 가진 듯하였고. 내가 뭐가 된듯한 우쭐함 마저 들었다. 모든 사람이 내 발밑에 있는 것 같았고, 마치 나의 능력만으로 이 자리까지 온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그렇게 나는 이 세상의 쉬운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이 먹잇감을 부동산 중개사가 알아차리고 나를 덥석 물었다.
"사장님. 이 매물 로열동에 로열층이에요. 지금 이 가격 아니면 살 수가 없으니 어서 사세요. 벌써 사장님 말고 사겠다는 사람 더 있는데 서둘러야 돼요"
동네를 채 다 둘러보기도 전에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중개사 말처럼 초등학교가 아파트 입구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초등학교 건립은 확정이라 중간에 취소될 일은 없었고, 게다가 중학교 부지도 있었다. 말 그대로 초품아에, 중품아였다. 이에 더해 주변에 대형 상권도 건립되어지고 있었고, 호수공원도 있었다. 집을 사겠다고 결심한 뒤로부터는 각종 부동산 파워블로거며, 부동산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창 공부를 하고 있던 때라, 그들이 이야기하는 입지분석에 의거하여 모든 것이 갖춰진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나는 남들이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마치 내 지식인거 마냥 반쯤 부동산 전문가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사겠습니다. 제가 계약하겠습니다.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그렇게 현금 3억이라는, 31살 자아도취에 절어있는 먹잇감이 부동산 중개사에게 잡아 먹히게 된 순간이었다. 계약을 하고 잔금을 치르며 그 뿌듯함에 나는 더 기고만장해 있었고, 부모님도 '역시 우리 아들' 주변의 친구, 직장 동료들도 '역시 김대리'라며 나를 치켜세워 주었다. 나는 이미 그 순간부터 세상에서 가장 투자를 잘하는 사람, 능력자로 추앙받고 있었고, 투자 전문가로서 주변에 막 조언이 답시고 떠들어 대고 다녔다. 내가 산 집이 가장 뛰어난 입지의 집이었고, 다른아파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사랑 새 아파트여
무슨 내 자식도 아니고. 어쩜 그렇게나 이뻐 보이는지. 입주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던 터라, 입주청소를 맡기지 않고 내손으로 청소를 다하고파서, 매일 퇴근을 새 아파트로 하였다. 현관문을 볼 때마다 비벼데 고 싶고, 뽀뽀라도 하고 싶었지만.
양가의 결혼 반대로 인해 홧김에 집을 샀건만. 막상 사고 나니 너무나도 애정이 가는 무엇? 집이 생겼고, 그 안에서 신문지 깔고 바닥에 잘 수는 없었다. 이미 집을 살 때 여자 친구와 나는 돈이 섞여 버렸기에 이미 평생의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가 되어버린 터. 그렇게 가전제품을 일단 채워 넣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결혼 승낙을 받고 결혼식을 올린 뒤에 같이 살면 되는 것이다. 미쳤지. 결혼 날짜도 잡지 않았는데 나와 여자 친구는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신혼 물품을 보러 가전샵, 백화점을 둘러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집은 신혼 물품으로 채워져 갔다.
역시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 집을 사고 혼자서 덩그러니 1년을 살았다. 그동안 여러 노력 끝에 완고했던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께서는 마음이 누그러지시는 듯했고, 우리 쪽 부모님도 어느 정도 마음이 누그러졌다.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집까지 사고, 신혼집같이 꾸며놓으니 어찌 결혼을 반대하겠나.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허락받고,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에 나섰다. 결혼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어찌됐건 우리만의 집이 있었다. 그것도 빚 하나도 없는, 우리만의 집.
3년을 살았는데...
2017년 1월 새 아파트를 매매한 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첫 집이라 그런지 매일 네이버 부동산에 들락날락 거리며 집값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산 가격이 꼭짓점이었고 그 이후로 거래도 없고, 거래가 있다 하더라도 나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속해서 실거래가기 찍히기 시작했다. 속이 쓰리면서도 내심 부동산 중개사가 한 이야기로 마음을 위로하였다.
"사장님 집은 로열동에 로열층이에요. 그래서 비싼 거고, 나중에 팔 때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비싸게 팔 수 있어요"
"다 그런거에요. 일시적으로 가격이 떨어지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산가격보다 훨씬더 많이 올라요. 사장님이 아직 젊어서 잘 몰르는거에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사는 곳은 흔히 말하는 뷰 깡패였고, 로열층에 속하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매번 나보다 낮은 가격으로 찍히는 실거래가를 바라보는 마음의 속 쓰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유를 찾으려고 해도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은 부동산 유튜브들이 말하는 입지조건에 모든 것이 부합했다. 비록 수도권 외각에 위치하여 지하철역과는 다소 무관한 지역이었지만, 초품아에 주변의 자연환경과, 몰세권 등등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아파트였다. 게다가 황무지였던 곳에 내 아파트가 첫 입주였고, 차례로 주변의 새 아파트가 계속해서 지어지고 입주되어지고 있었다. 분명 사람들이 모이면 살기 좋은 동네가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문이 나서 더 이사를 와 집값이 올라간다고 배웠다. 그런데 정반대로 흘러가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첫 집을 마련한 2017년은 대출규제도 심하지 않았던 터라, 내가 대출 없이 현금 주고산 3억의 돈으로 서울의 요충지에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살 수 있던 때였다. 심지어 3억이면 압구정 현대아파트도 살 수 있었다. LTV 70%까지 대출이 되었으므로, 내 돈 3억에 대출 17억이면 당시 20억이던 압구정 아파트를 이론적으로 구매가 가능했다. 하지만 대출을 받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그러지 못했던 내가 멍청한 거지.
어찌됐건 날아오르는 서울 집값을 바라보며, 우리 집은 왜 이러나 하며 매일이 속 쓰림으로 잠들었다. 그러면서도 '괜찮아. 이 아파트는 내가 살려고 산거잖아. 내가 만족하면 됐지'하며 토닥거렸고, 당시의 이 아파트를 살 때의 나의 결정이 옳았음을 계속 반복 주입하였다. 그러지 않으면 멘털이 나가서 생활이 도저히 안될 것 같았다. 나를 믿고 따라준 여자친구에게도 볼품 없는 남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 아파트와 동일한 새 아파트가 연달아 지어지고 사람들이 입주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 동네다운 동네가 되어가는군'하면서 뿌듯해하며 보았던 그런 단지들이. '아...! 이것 때문인가? 계속해서 신축이 지어지고 공급이 많아지니까 우리 집값이 떨어지는 건가?'라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주변에 새 아파트가 계속 지어지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서 북적북적거려 좋은 것도 있지만, 결국 내 아파트는 점점 구축이 되고, 가치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같은 가격인데 더 신축을 바라는 게 시장의 논리임을 망각했던 것이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에 가득 차서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 경제원리도 몰랐던 멍청이.
그렇게 내가 살던 지역은 지나친 공급량으로 집값이 변함이 없었고, 반면에 수도권의 주요 지역과 서울은 각종 규제정책으로 집값이 천정부지 치솟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2019년 하반기에 집을 처분하기로 결심하였다. 분양권에 프리미엄까지 1,000만 원을 더 지불하였지만 3년간 1원한장 오르지 못한 가격으로 매도하였다. 취등록세에 다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엄청나게 오른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실패한 투자나 다름없었다.
이를 통해 나는 깨달았다. 집은 내가 사는 공간이고, 내가 살기 좋으면 된다고 말하면 안 된다. 이건 기만적인 행동이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집을 통해 돈을 벌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 빼고 다른 집값들이 오를 때 속 쓰림이 없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으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집을 통해 돈을 벌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3년의 기간 동안 비싼 값을 치르고 부동산을 배운 셈이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