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펑펑 쓰던 친구가, 집 하나로 내 자산을 역전하다니
한 번씩 세상이 원망스럽다.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때도 있다. 누구는 버스비가 아까워 집까지 걸어가며 돈을 모았는데. 주말마다 나이트 가고, 배달음식 시켜먹고, 입사하자마자 할부로 산타페를 뽑았던 친구가. 풀로 대출 당겨서 산집이 어느새 수억 원이 뛰어 버렸다. 반면 나는 대출도 없이 산집이 3년간 요지부동이고.
이게 자본주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기에 고민이 있다. 그렇다고 부자들이 고민이 없는건 아니다. 또한 집이 없는 사람들만 고민이 있는 건 아니고, 집이 있으면 또 그에 맞는 고민이 따라온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집 있는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 배부른 고민일 수 있지만, 당사자들에게 그 나름대로의 세상에서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집을 사고 나서 고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갚아야 할 대출이자도 없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와 알콩달콩 살아가기만 하면 아주 성공한 인생일 거라 믿었다. 수도권이라 하지만 내가 산집은 수도권 중에서도 가장 외각에 위치한 신규 택지지구였고, 신혼집으로 쓸 집이었기에 가격의 변동 따윈 신경 안 쓸거라 생각했다. 그저 새집이니 좋았고, 여자 친구와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는 게 좋았다. 그렇게 마냥 꽃길만 걸으면 되는 거였다. 나에게 집은 사는것(Buying)이 아니라 사는것(Living)개념이었다.
내가 집을 구매한 때는 2017년 1월경이었고, 그와 함께 나의 동기 몇몇도 비슷한 시기에 집을 구매한 친구들이 생겨나길 시작했다. 결혼 예정인 동기들 중 일부는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고, 어떤 동기는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사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무리해서 집을 산 한 친구에게 나는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기준에서 그 친구는 돈을 흥청망층 쓰면서 회사를 다녔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흥청망청 쓰면서 살아왔으니, 빚을 엄청 지면서 집을 샀다는 논리였다. 빚은 나에게 나쁜 것이었다. 빚을 져가면서 까지 집을 산 그친구가 너무 걱정이 되면서도 한심스러웠다.
"야, 너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돈 모아야 할 시기에 할부로 산타페를 할부로 지르면 어쩌자는 거야. 휴... 답답하다"
"야, 미쳤나? 돈도 없는놈이. 어떻게 대출을 다 갚을려고 그렇게나 많이 대출을 받아 집을 샀어. 차리리 전세집을 알아보지. 휴...너 진짜 인생이 노답이다"
난 그때 이 말을 한 게 진심을 담아서 친구에게 한 쓰디쓴 조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한 나 자신이 참 부끄럽고 한심스럽다. 왜냐면 결과론적으로 그 친구는 옳았고, 나는 틀렸기 때문이다. 70%의 대출도 모자라 부모님께 돈을 빌렸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써가며 서울 외각지에 새 아파트를 구매하였었다. 대출에 대한 나의 인식이 꼰대 수준에 가까웠던 터라, 대출을 받아가며 집을 사는 것은 능력이 없는 자들이 하는 비겁한 수단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대출 없이 3억이란 현금을 모두 주고서 수도권 외각의 새 아파트를 산 나 자신이 더욱더 대견스러웠다. 나는 능력자이고 그 친구는 능력 없는 빚쟁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우월감에 빠져있었고,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부동산 상승기인 2018년, 2019년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 3,4천만 원이나 들어갔을까? 그 친구는 그 정도의 자기 자본과 대출로 산 아파트가 2억 넘게 상승하였다. 그리고 호가 기준으로 3억 가까이 된 상황이었다. 문득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며 자랑을 듣게 되었는데, 더 이상 통화를 지속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곧 지하철이 연장된다는 호재로 인해 3억 이상 올라갈 거라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나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속이 주전자처럼 부글부글 끓어 전화를 끊고서도 한참을 비통함과 억울함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벼락거지?
지금 와서야 돌이켜 보니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무기력한 기분. 삶의 목표가 없어서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상실한 기분. 그 친구와 통화하기 전까지 내 삶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통화하고 나서는 지옥으로 변했다. 사실 현실이 변한 건 없었다. 통화하기 전/후로 내가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사별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집값이 하루 만에 폭락한 것도 아니었다. 변한 건 유일하게 내 마음이었다. 그 친구와의 한번의 통화로 인해 우울감에 빠지게 된 것이다.
억울했다. 너무 억울했다. 억울하다고 100번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분통하고 억울했다. 회사에서 신입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열심히 절약하고 모았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친구관계를 끊어가면서 까지 희생하며 살아왔다. 회사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였다. 진급에도 열심이었다. 임원을 달기 위해, 회사에 충성하였다.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 외의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돈은 월급을 열심히 모아야만 하는 그런 존재였고, 그 밖의 수단으로 돈을 모으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렇게 4년간 현재의 와이프와 나는 3억이란 돈을 악착같이 모았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며 돈을 모을 때 그 친구는 열심히 놀러 다녔고, 산타페도 할부로 질러가며 돈을 써댔다. 그리고 본인 자본 3천만 원과 나머지는 대출로 집을 구매하였고, 그 집이 현재 3억 넘게 올랐다. 3억. 우리가 4년간 똥 빠지게 모은 금액이었는데. 그 친구는 그 돈을 집이 벌어다 주었다.
한동안 허탈감과 우울감에 사회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모든 게 허무했다. 한때 대기업에 취직하였다고 부모님께 회사에서 보낸 꽃다발과 함께 웃으며 사진 찍었던 그 모습도. 첫 월급날, 생각보다 너무 높은 금액으로 통장에 찍힌 그 금액을 보며 황홀했던 그때. 성과급으로 천만 원 단위로 통장에 돈이 들어와서 어깨가 으쓱했던 그때. 모든 게 허무했고, 월급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 친구가 가만히 앉아서 몇 년 동안 힘들게 모아야 벌 수 있는 돈을 집값 상승으로 번 모습을 접한 이후로, 다른 직장 선배들도 그렇게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럴수록 난 더욱더 우울감이 사로잡히게 되었다.
"야! 정신 차려. 넌 집을 애초부터 신혼집으로 살려고 구매한 거였잔 아! 흔들리지 마!"
나 자신에게 그렇게 외쳐보았다. 우울감과 무기력이 찾아올 때마다 애써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워보려 노력해 보았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 친구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배가 너무 아팠다. 꿈에서 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얼울함에 몇 날 며칠을 분함속에서 새벽에 깨기를 반복했다. 내 인생이 한순간 부정당한 기분이었으니 어련했겠나. 내가 학교에서 배우고 부모님께 배운 가르침은 잘못되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집을 사는 것(Buying)이 아니라 사는 것(Living)이라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그런데 현실세계에서 그 명언을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사람이다. 돈을 사랑하고, 돈을 벌고 싶고, 옆집사람이 돈을 벌면 배가 아픈 그런 사람이다. 난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기로 했다.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대출을 풀로 받아서 집을 산 그 친구가 운이 좋아서 돈을 벌었든, 아니면 내가 모르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돈을 벌었든 중요하지 않다. 결국 이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고, 그 박탈감에 마음이 걸레가 될 정도로 너덜너덜해지고 나서야 이 현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2017년 1월 설레는 마음으로 구매한 첫 신혼집을 2019년 중반이 되어서 팔기로 결심했다. 돈 1원도 오르지 않은 그 집을 그냥 팔기로 했다. 취등록세 생각하면 결국 손해였고, 기회비용까지 계산기에 넣으면 엄청난 손해였지만 어쩌겠나. 마음이 아프고, 굉장히 괴로웠지만 비싼 값으로 강의를 들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서울과 먼 지역, 공급이 넘치는 지역에는 집을 사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렇게 직접 깨지면서 자본주의를 알게되었다. 자본주의가 밉지만, 밉다고 부정하며 살아갈수는 없다. 자본주의와 결혼을 한 이상 내사전에 이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