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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Jan 03. 2022

내멋대로 퇴사한 직장인의 최후

퇴사하고 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2013년. 내 나이 27살에 취업을 하였다. 적지 않은 연봉. 만족스러운 직장생활. 사람 좋은 파트장님과 팀장님. 그런데 나는 2018년 1월 내 나이 32살에 퇴사했다. 정확한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냥 살짝 정신 나갔었던것 같다. 지 분수도 모른체.




내 그릇은 이보다 큰데...

퇴사 결심은 한순간



퇴사의 이유는 다양하다. 대부분 연봉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사람이 힘들어서가 아닐까. 그런데 나는 어느 곳에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성과급도 잘 나오고 월급도 높은 회사에 운 좋게 입사해서 매년 저축을 많이 할 수 있었고, 내 집 마련에도 성공했다. 회사 내에서도 대리 2년 차 정도 되니 어느 정도 자리가 잡아 여유도 생겼다. 날 이끌어 주려는 상무님도 계셨고, 나름 승승장구하며 나아갔다. 이대로 쭉 가면 직장인으로서는 평균 이상 이상인 그런 삶은 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만족스럽다 보니 미쳐버린 것일까. '오냐오냐' 하니까 진짜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던 것일까. 비록 지방대를 졸업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고, 빠르게 경제적으로 자립하였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었지만, '내 나이 32살에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 하는 오만함마저도 생겼다. 이 오만함이 문제였을까. 어느덧 매달 받는 월급이 적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잘 살다가 왜 갑자기 월급이 적게 느껴졌을까.



"과장님, 과장님은 왜 그렇게 돈에 관심이 많으세요? 매번 볼 때마다 주말에는 뭐 집 보러 다니시고, 주식도 하시고. 듣기로는 금에도 투자하신다고 하고."



"야, 직장생활 월급쟁이가 만족스럽냐 너는?"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돈을 저축할 줄만 알았지, 그 돈으로 투자를 통해 돈을 불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던 때가. 아끼고 아껴서 저축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지금의 와이프와 대출 없이 새 아파트를 장만했던 터라, 과장님의 반문이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월급쟁이를 만족하지 못하면 뭐 어째란 말인가. 월급을 늘리는 건 힘들고, 더 아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투자라는 단어는 나에게 그냥 도박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었고, 과장님께서 하는 직장 밖 투자활동들은 나의 시각에서 회사의 충실하지 못하는 반항아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억울해져 갔다. 먹을 것 참아가며 나는 돈을 모으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집 한 채 마련을 겨우 했는데. 그렇게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이게 뭔 상황인가. 과장님은 경매로 싸게 집을 낙찰받아 높은 가격으로 대팔고, 그렇게 나의 몇 년 치 연봉을 짧은 시간 안에 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허 참...



이뿐만 이겠는가. 나는 주식계좌도 없고, 주식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데. 주식, 채권, 금, 원자재에 거침없이 돈을 집어넣고 몇천만 원씩 버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자니 속이 뒤틀어지는 줄 알았다. 어쩌면 허탈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모아 왔던 나의 돈들이 나의 연골을 갈아 넣고, 영혼을 쥐어짜며 그렇게 모은 돈들인데. 과장님께서 돈을 버는 방식은 뭔가 불법을 행하는 듯했다. 회사에 충실하고, 진급에 진심이며, 그렇게 연봉을 올리며 살아가야 하는데, 대단히 이단아 같은 행동을 하는 배신자 같았다.



그런데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그 세계가. 이왕 돈을 모을 거, 그 돈으로 투자를 해서 빠르게 돈을 불려 가면 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인 거 아닌가.



"과장님, 저 책 좀 추천해 주세요. 저도 투자 좀 해보고 싶습니다"



"뭐? 네가? 뭐에 관심 있는데?"



".... 네? 뭐에 관심이 있냐고요?"



"그래 인마, 부동산인지 주식인지. 내가 뭘 알아야 책을 추천해 줄 거 아니야?"



그렇게 나는 몇 권의 책을 추천받았고, 경제서적과 부동산 관련 책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 무슨, 미국의 달러를 찍어대는 기관이 국가 소속 기관이 아니라 사기업이라고 하질 않나. 대출을 이용해서 여러 채의 아파트를 사거나, 전세 끼고 갭 투자로 집을 여러 채를 사질 않나. 3억으로 집을 30채나 갭 투자해 순식간에 부자가 됐다고 그러질 않나. 이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이야기가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들은 사실이었다. 나만 너무 멍청하게 회사에 충실하고, 진급에 진심이며, 월급을 아껴 저축하고 있었다. 화폐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나의 저축으로 모아가는 돈의 속도는 실제로 물가상승 속도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이뿐이겠는가. 추천받은 주식책을 읽어보니. 가만히 앉아서 기업 분석하고 차트 흐름 분석해서 순식간에 돈을 버는 마법 같은 공식들을 알려 주었다. 이대로만 따라 하면 될 것 같았다. 내용은 방대했지만 공부만 하면 될 터였다. 이런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너무 늦게 알았다는 생각에 마음의 조급함마저 들게 되었다.



그렇게 부동산, 주식책을 매일 미친 듯이 섭렵해 나가다 보니 점점 이론적인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름 적은 돈으로 시도해보니 성과도 나름 괜찮게 나왔다. 이때 나의 오만함은 또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한번 하면 잘해! 이 회사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계속하기엔 나의 그릇이 너무 커"라며 나의 목은 마치 병원에서 깁스를 한 거처럼 뻣뻣하게 쳐들려 있었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나라는 인간은 월급쟁이 할 그릇이 아니라, 투자와 사업을 해야 할 인간이라 생각했다.




퇴사 후 삶

바닥 치는 자존감



그렇게 단순하고 무식한 오만함으로 둘러싸인 나는, 5년 넘게 다닌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하였다. 매일 싱글벙글 만족해하며 다니던 이놈의 대리가 갑자기 퇴사 통보를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회사는 나에게 퇴사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내 갈길을 가야 했다. 나는 이 회사에 몸을 담기엔 너무 큰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의 마음은 되돌릴 수 없다. 더 큰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와버렸다. 준비라고 해봐야 회사 밖에서 버틸 수 있는 총알이 몇 발 정도 남았나 정도 계산해 본게 고작. 일단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와 살 신혼집은 마련해 두었다. 근데 그게 다였다. 신혼집을 사고 나서 모은 월급이라 해봐야 몇천만 원 정도였다. 뭘 할지는 몰랐지만 현금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회사까지 나올 정도로 비장하게 결심했는데, 남자라면 거창하게 사업을 일구어야 할거 아닌가? 그 몇천만원 으로는 부족했다. 몇억은 있어야 회사라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를 나왔으니 더 이상 월급은 없을 터이고. 어디서 그 큰 금액을  마련해야 하지?



집을 담보로 잡고 1억 가량을 대출받았다. 쓸 생각은 없었지만 마음은 든든하였다. 대출을 받으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택 담보대출은 신규주택을 매매할 때만 이용할 수 있는 대출상품이고 이미 그 집에 살고 있다면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할 수 없다. 대신 생활안전자금이라고 해서 1년에 1억 한도로 나오는 대출상품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마련한 1억 원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만 정하면 될 터였다. 잠깐. 그런데 이런 건 회사 나오기 전에 준비를 다 하고 나왔어야 되는 거 아닌가? 보통 직장인들이 사업하겠다고 퇴사를 하면 미리 아이템을 어느 정도 정하거나, 이미 병행하고 있다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한창 자본주의에 맛들려 있던 터라 시중에 나와있던 자기 계발 및 경제/경영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가고 있던 때였다. 빠르게 부자 되는 방법을 책에서 알려주고 있었고, 본격적으로 해보진 않았지만 그냥 그대로 따라만 하면 100억을 넘어 1,000억대 부자가 되는 건 나에게 시간문제 일 것 같았다. 참 문제다. 그런 성공담을 다루는 자기 경영서적을 읽으면 저자에 도취되어 나도 그렇게 될 거 같은 착각을 주는 게. 나는 그런 착각 속에서 회사문을 박차고 건방지게 나온 것이다.



퇴사 후 삶은 어땠을까? 의외로 고요했다. 더 이상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몸의 반응은 의외로 빠르게 적응하였다. 기분이 좋았냐고? 그 기분 좋음은 순간의 찰나였다. 자유의 몸이라는 기분을 만끽하는 건 유통기한이 의외로 짧았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와 식을 올리기로 한 날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기에 무엇이든 해볼 수 있었다. 다만 양가 부모님께 퇴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알렸다간 어떤 사단이 날지 몰랐다.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근데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설득논리를 펼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당장 퇴사 후 나의 삶은 크게 변화가 없었으나, 점점 결혼날짜가 임박해 오고 나 자신에게 눈치가 보이는 시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이상했다. '내가 왜 나에게 눈치를 보지?'라며 스스로 반문하면서도, '이제 눈치 좀 챙기자!'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결혼을 앞둔 놈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돈을 까먹어 가며 백수생활을 하는 게 스스로에게 책임감 없어 보였던 걸까? 그렇다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었다. 돈을 벌지 못한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은 냉혹했다.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 그건 그냥 놈팡이였다. 몽상가였다. 무책임한 사람인 것이었다.



나 자신에게 이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압박을 하면서부터 재앙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강요한 것은 게으름이라는 단순한 행동변화를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성공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닝 루틴 따위를 하라는 건 아니었다. 세상에 나가서 당장 1원이라도 벌어오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1원. 회사에 있었다면 그 1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걸어가다가 바닥에서 돈을 주워도 그 이상의 돈을 줍는, 돈 같지도 않은 돈이었다. 그런데 회사 밖 세상에서 1원을 당장 벌려면 남의 호주머니에서 도둑질하는 건 말고 막상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1원을 어떻게 벌어야 하지? 당장 어떻게? 책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지? 1인 창업, 무자본 창업, 유튜버, 블로거, 광고수익, 코딩, 등등.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간 책에서 돈 버는 방법을 무수히도 많이 접했지만, 막상 현실세계에서 적용하자니 너무나도 막막했다. 나에게 강요하는 '당장'이라는 단어만 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에겐 결혼 전이라는 데드라인이 존재했고 당장 성과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또한 내가 만든 상황이었고, 자초한 일이었다.



생각은 생각을 또 가져오고,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저것 다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몰부터, 과외 알바, 택배 상하차, 포장 등등. 세상에서 내가 1원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월급쟁이 생활이 훨씬 편했고 부가가치가 훨씬 높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존재했다. 회사 밖 세상에서는 더 이상 나를 대변해 주던 대기업 명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능력 없는 취준생, 백수, 퇴직자로 비치고 있었다. 자존심이 있었던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세상은 그런 나에게 '그만 고개를 수그려! 넌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무슨 대학을 나왔건, 어떤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연봉을 받았건 상관없어. 넌 그냥 지금 평민 출신이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굽혀지지 않은 나의 자존감은 결국 사단을 내고 말았다. 아직까지 그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다 보니 현실과 괴리를 발생시켰고, 결국 깊고 깊은 우울증을 가져다주고 말았다. 자존감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야 말았다. 현실세계에서 성과란 돈을 버는 것과 동음이의어였고, 나의 마음속 의지와 현실세계 괴리는 결국 마음의 상처만 잔뜩 가져다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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