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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Jan 15. 2022

살기 좋다고 집값이 오를 거란 착각

내가 살기 좋다고 남들도 살기 좋은 건 아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집이 있는 자의 자신감 넘치는 아침인사. 인생 전체를 보았을 때 우리 모두는 조울증 환자일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기분이 좋은 하루, 한 해를 보내는 때도 있고, 세계적인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마냥 우울한 한 루, 한 해를 보내는 때도 있다. 처음 집을 샀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듯했고, 남들 집값은 다 오르고 내 집값이 오르지 않을 때는 세상 다 잃은 표정이었다. 두 번째 집으로 갈아탈 때 '잘못 갈아탄 건 아닌가'라는 불안감에 나의 기분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쳤고, 시간이 지나 신고가를 갱신하며서 다시 기분 좋은 나로 탈바꿈하였다. 조울증 환자임에 틀림없다. 그 이후로 출근길이 가볍고, 회사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한다. "내일도 좋은 아침이 될 것 같습니다!"




나만의 착각

살기 좋다는 것의 기준



내 인생 두 번째 집은 첫 번째 집에 비해 2배가 비싼 값을 지불하였다. 나의 피와 땀, 그리고 월급쟁이의 코 묻은 돈은 그렇게 부동산 계약서 한 장으로 매도자에게 허망하리만큼 '슝~' 계좌이체되었다. 그러고 알콩달콩 와이프와 좋은 추억을 쌓으며 잘 살았다. 언제나 나의 퇴근길은 행복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퇴근시간이 나보다 빠른 와이프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하철까지 나를 마중 나와 주었고, 먹는 걸 좋아하는 우리 둘은 퇴근길에 위치한 마트에 들러 하루를 마무리할 식재료를 샀다.



'췩췩' 재빨리 요리를 하고,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이며 저녁 만찬을 하고 나면 이내 밖을 나가고 싶어 진다. 집 밖으로 나가 단지를 벗어나면, 대형 운동경기장이 있다. 조깅을 할 수도 있고, 배드민턴을 칠 수도 있고, 캐치볼을 할 수도 있고. 드넓은 운동경기장 부지는 잘 관리된 잔디로 뒤덮여져 있고, 이른 저녁시간임에도 가족끼리 산책 나오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세어 나온다. '역시 이 집을 잘 샀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주변에 쾌적한 공원이나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 큰 몫을 하였다.



아침의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1층에 도착하여 동 출구를 나선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초등학교 입구. 그렇다. 내가 사는 아파트, 그리고 내가 거주하는 동은 초품아다. 그것도 바로 엎어지면 코 닿는 완전 초품아. 늦게 출근할 때면 초등학교로 총총총 뛰어가는 초등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역시 이 집을 잘 샀어'라는 생각이 또 든다. 참 행복하다.



행복으로 가득 찬 평일들을 보내고 나면 이내 주말이 찾아온다. 주말은 그런데 더 행복하다. 코스트코와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지척에 있어서, 장볼생각에 설렌다. '소고기를 사서 와인이랑 먹을까? 즉석식품코너에서 초밥이랑 닭갈비 세트를 살까?' 주말 밥상을 가득 채울 메뉴 선정은 언제나 나의 도파민을 분출시킬 만큼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금요일 저녁도 광란의 치맥파티를 벌리고 행복하게 마무리했는데, 주말은 더 행복한 광란의 파티를 할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 '역시 이 집을 잘 샀어'라는 생각은 주변에 대형몰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을 더 줘서 더 비싼 집과 지역으로 이사 가면 더 살기 좋겠지?"



이런 사고 흐름을 보이는 건 역시나 나의 경험 기반에서 나온 당연한 수순이었다. 첫 번째 집은 경기도 외각에 위치했기에 서울의 직장까지 출퇴근이 너무 고됬다. 그래서 서울 근교의 집을 두배 이상의 집값을 지불하고 갈아탔다. 그 뒤로는 출퇴근 교통이 천지 개별 할 만큼 좋아졌고, 주변 편의 시설도 훨씬 좋아진 터였다. 그러니 돈이 비싼 만큼 그것과 비례해서 내가 살기 좋아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내가 살기 좋다고 집값이 비싸고, 내가 살기 불편하다고 집값이 싼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가 살기 좋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다니는 직장까지 출퇴근이 편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집 근처에 있으면 살기 좋은 건가?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선 집 근처에 헬스장이 있어야 하고, 주말에 조깅이라도 할 수 있게 지척에 공원만 있으면 살기 좋은 건가? 모든 것의 중심은 '나'자신에게 있었다. 살기 좋다는 것의 기준이 모두 '나'에게 있다 보니, '남'들도 다 그런 줄 착각했다. 살기 좋다는 것과 집값은 '나'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살기 좋다고 '남'들역시 살기 좋아할 거라고, 그리고 '남'들이 살기 좋으니 자연스럽게 그 수요로 인해 집값은 오를 거라고.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내 기준에,

살기 불편한 동네가 집값이 더 비싸네?



이런 착각을 가지고 있으니, 다음 이사 갈 집으로 선택한 목동아파트 가격이 이해가 안 되는 건 당연지사. 분명 우리 집이 더 신축이고, 지하철까지 거리도 더 가까웠다. 게다가 초품아였고, 주변에 대형 공원도 있으렷다. 코스트코와 이마트 트레이더스 같은 대형몰이 지척에 있어, 장 보는 것도 너무 편한 곳이었다. 어떤 정량적인 데이터를 들이밀어도 목동아파트보다 나의 집은 우월한 입지를 가졌다. 어디서 감히 녹물 나오고 오래된 아파트 따위가 우리 집과 견주려고 할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목동아파트가 더 비쌌다. 그것도 훨씬.



길을 가다가 묻고 싶었다. '저기요! 아저씨. 제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제가 지금 여기 살고 있거든요? 그런데 목동아파트 아시죠? 서울에 교육환경, 학군 좋기로 유명한 그 동네 말이에요. 아니 그게, 지금 제 집보다 거기가 집값이 더 비싸거든요? 제가 도무지 이해가 안돼서 그런데, 어디가 더 좋다고 생각하세요? 저희 집은 지하철까지 이 정도 거리고, 마트도 있고, 헬스장도 있고, 불라 불라~' 진짜로 묻지 않았지만, 만약 이 아저씨가 대답을 했더라면 '당신 집이 더 좋아 보이는데요?'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애 가진 엄마에게 물었다면. '저기요! 어머니. 제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불라 불라~' 과연 무슨 대답을 들었을까. '제 생각에는 목동이 훨씬 살기 좋은 거 같은데요?' 분명 다른 대답이다. 아저씨와 애엄마하고의 대답은 이렇게 나뉜다. 아저씨의 살기 좋은 기준은, 출퇴근이 조금 편하고 소소하게 담배와 소주 사기에 가까운 마트 정도 집 근처에 있으면 된다. 하지만 어머니의 살기 좋은 기준은, 애들 통학이 편해야 하고 학원이 밀집해 있어야 하며, 교육환경이 우수해야 한다. 마트가 조금 멀어도 지하철이 조금 멀어도 괜찮다. 어머니가 살기 좋은 기준의 1순위는 역시나 자기 자녀의 성장환경과 교육환경이 좋아야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30대인 나의 살기 좋은 기준은? 분명 다르다. 4,50대 아저씨의 살기 좋은 기준과 애를 키우는 어머니의 살기 좋은 기준과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아파트를 사기로 의사 결정하는 사람이 나 같은 30대가 많을까? 아니면 4,50대 아저씨? 아니면 집안의 실세인 아내? 답은 어느 정도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살기 좋다고 해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집값을 움직이는 실제 수요자들의 살기 좋은 기준은 나의 기준과 다른 것이었다. 그제야 조금 부동산이란 게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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