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도르 Dec 25. 2018

혐오시대를 지나가는 중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난게 벌 같아

출처 : SNL 코리아

김숙이 출연했던 [SNL코리아]의 '걸크러쉬'를 극대화시킨 콩트에서 부장이라는 사람이 "김대리 오늘 왜저리 까칠해? 생리하나?"라고 말하자 김숙은 "그럼 부장님은 어제 몽정하셨나봐요, 기분이 좋아보이세요? 우리 부장님 건강하시네~" 라고 호탕하게 되받아치는 장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한 걸그룹 멤버가 '82년생 김지영' 이란 책을 읽고 있다는 언급만으로 팬들로부터 보이콧을 당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 기사와 관련해 친절한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데, 한 여자 고등학생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친오빠가 그런 쓰레기 같은 책을 왜 보냐고 말했다는 댓글부터, 여자도 군대를 가야 정신을 차린다는 밑도 끝도 없는 해결책 까지 정말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욕이 배따로 들어오랴?” 라는 말이 있다. 진짜 칼이 아니고 말이라서, 어쩌면 누군가에게 칼이 될지도 모르는 말들을 마구 내뱉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았다. 이게 바로 혐오시대를 사는 참 모습일까.


처음 서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았을때 ‘어? 나랑 동갑이네’ 하고 가볍게 책을 집어들었고 그렇게 펼쳐진 한 페이지에서 시작해 끝까지 그 자리에서 쉴새없이 읽어내려갔다.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육아’ 부분을 빼놓고는 나의 일기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황이나 소재가 비슷했고 나아가 내가 대한민국을 살아오며 느낀 감정들을 들킨것 같은 황당함과, 미처 입밖으로 꺼내지 못해 삼키기만 했던 부끄러움들, 그리고 “이제서야” 이런 이야기들이 책이라는 결과물이 되어 내 손에 들려져 있다는 해방감과 미안함 등등 오만가지 감정이 범벅되어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얼마전 돌잡이 딸 하나를 키우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딸을 데리고 나가면 어딜가나 “이제 아들만 하나 낳으면 되겠네” , “그래도 아들은 하나 있어야지”라는 말을 들어서 속상한 마음에 일면식도 없는 할머니께 아들을 낳을 생각이 없다고 소리쳤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울분을 토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지만 우리는 아직도 자주, 지속적으로 “남자가 중심인 세상에 살고있다”는 메세지를 받는다. '여자가 살아가는 어려움'을 '말'하는것 만으로도 혐오가 되는 세상에서 또다시 여자를 키워내는것의 어려움에 대해 82년생 김지영은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기 주장을 정확히 말하는 성격이다.

대학때부터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성깔있는 여자"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성깔있는 남자들과 자주 부딪혔다. 성깔있는 내가 귀여운 우산이라도 펼치면 "야 넌 키티랑 안어울려 애교있는 지영이나 어울리지" 라는 말을 듣곤 했고 내 돈주고 내가 산 우산 내가 펼치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너같은 애랑 누가 만나겠냐" 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 나 성깔 있다. 알면 건드리지 말지 그랬냐.


어느날은 조교님 방에서 우연히 우리 과 학생들의 성적표를 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남학생들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훨씬 높은 것이었다.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교수님께 해명을 요구했는데, “남자는 장차 처자식 먹여살려야 하잖아~”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들려왔다. 이런걸 바로 '어이 없다' 라고 표현하는 거겠지.


그렇게 무모한 시절을 지나 직장생활 전반전. 2000년 중반만 해도 성희롱은 너무 어려운 이슈였고 성희롱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무지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젯밤에 뭐했어? 남자한테 빨리고 다니고" 라는 말을 회사 동료에게서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나의 수치심보다는 이게 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하는 데 급급해서 "아니에요, 모기 물린 자국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뒤늦게 “그거  성희롱입니다” 라는 말을 못한 게 너무 분해서 이불킥을 날렸던 기억이 있다.


이런 부당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나 남자들은 말한다. 성희롱, 성폭행 당시에 왜 “NO”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그런데 나는 ‘거부’ 이전에 ‘동의’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말이나 행동에 대한 거부를 어떻게 미리 할 수 있냔 말이다. 어떤 행동이나 말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다면 전해도 되는지 아닌지 동의부터 구하는게 먼저가 아닐까.


회사생활 후반전. 남자직원들이 많은 회사에서 전반전을 끝내고 삼십대가 된 나는 사회가 정의하는 ‘여직원’이 되어주기 싫었다. "여자라서" "역시 여자들은"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술을 마시고도 기를 쓰고 취하지 않으려 꼿꼿하게 버텼다. 그리고 여자들의 우정은 얄팍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자 직원들과는 더 신경 써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눈물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한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차라리 독하다는 소리를 듣는것을 선택했다. 더구나 자신의 의견은 주머니에 넣어 두는 게 미덕인 한국 사회에서 자기 주장을 귀찮을 정도로 꺼내보이는 나를 남자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한번은 사무실 바닥 공사를 하는 날이라 퇴근하며 각자 책상에 의자를 올려놓고 가야 했는데 그때 사무실 의자는 '사장님 의자'라 불리우는 들기 힘든 무게의 의자라 같이 일하는 남자직원에게 '함께 들어달라' 부탁했지만 평소 여직원 들에게 '애교있는' 행동을 요구하던 그 남자직원과 나는 상극이었던 터라  "남녀 평등한 시대 아닙니까, 특히 현진씨는 그런 부탁 하면 안되는거 아닌가요?"라는 말을 듣고 결국은 의자를 올리지 못하고 퇴근했다.


심지어는 "페미니스트 운동가가 되어 보지 그래"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비아냥거리는 표정은 덤으로 딸려 왔다. 내가 무슨 대단한 페미니스트 정신을 가지고 연설이라도 했으면 그런 말을 들어도 뿌듯했으련만, 회사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TV의 한 쇼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결혼한 여자 출연자에게 남편에게 보여주는 애교를 보여달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왜 남편에게 보여주는 애교를 공식적으로 보여달라고 하느냐. 꼭 여자들한테는 애교 보여달라고 하더라’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나는 졸지에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자기피셜이 분명한 여자에게 호의적이지 않는 것은 비단 남자들 뿐만이 아니다. 걸크러쉬, 센언니 라는 단어 뒤에 숨어 여적여를 자처하는 후배들, 여자동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나는 원래 그런 말 못하잖아 말 잘하는 니가 대신 해줘”

“부럽다. 너는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것 같아서”

그들은 상처투성이가 된 나에게 영혼없는 쌍엄지로 본인들의 편이 되어줄 것을 요구한다. 본인은 그런 말을 못한다지만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수많은 센 언니들의 등 뒤에 숨어 '나는 불편함을 이야기 하지 않는 여자'임을 어필한다. 결국 그렇게 여자의 적은 여자가 된다. 나는 '여적여'라는 말이 남자들의 입에서 나올 때 정말 슬프다. 여자들까지 여자의 적이되어 내 주위엔 적들만 남아있는곳, 이것이 내 직장생활 후반전의 풍경이었다.


면접중 남자친구도 없는 나에게 '결혼적령기'임을 친절히 알려주시며 2세계획을 물으셨던 꼰대 사장님, 사내에서 인기가 많아 많은 남자들을 만났지만 결국 혼자만 퇴사를 해야했던 여자 직원, 사무실에서 "오빠"라고 하길래 나한테도 "언니"라고 부르라 했더니 그건 또 안되겠다던 여자 직원, 술만 마시면 나오는 "이팀장은 일은 잘하는데 여성스럽지가 못해~시집은 가야지" 라는 식상한 레퍼토리, 업무상 문제만 생기면 '여자들 하고 일해먹기 힘드네'로 마무리 지었던 수많은 십원짜리 결론들.


이런 말을 하면 내 주변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이야기 한다. "나는 아니야 나 같이 좋은 남자도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묻는다. “아직도 그렇게 여자들이 살기가 힘드냐”고. 물론 좋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의식이 빠르게 변화하기 힘든 건 단순히 말처럼 나쁜 남자나 좋은 사람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잠재되어 왔던 의식 때문에 '몰라서' 내뱉은 한마디에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 말인지 이해하려 노력하고 사과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 한마디 말이 왜 상처로 여자에게 돌아오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은 훨씬 많다. 회사를 오래 다니다 높은 자리에서 모든 걸 버린 능력 있는 여자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 어린 초등학생 나이에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게 벌이라는 생각을 했다니까


나는 혐오사회 라는 말 자체가 너무 지친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혐오사회가 된 것이 아니라 오랜동안 안에서만 내재되어 있던 혐오들이 분출되는 시대가 아닐까. 이렇게 혐오를 밖으로 분출하다 보면 변하는 날도 올까. [82년생 김지영]은 그저 화두를 던진다. 편을 가르자는게 아니라 이제는 남과여 함께가는 리그이니 내 생각도 한번 들어보라고, 함께 생각을 좀 해보자고. 부디 이런 대화를 통해 말 못했던 '불편'들을 더 많이 이야기 하면서도 서로를 겨냥하지 말고 모두 각자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혐오사회를 지나 남의 행복에 관심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자의 적은 여자도 아니고 여자의 적은 남자도 아니다. 여자의 적은 '자기 자신' 이다. 이왕 싸울거면 자기 자신과 싸우자. 그리고 더 나아지는 여자로서 똑부러지게 주장해도 된다.

각자의 불편함을.






아도르캘리그라피

블로그 http://blog.naver.com/jwhj0048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dore_writing/


매거진의 이전글 삼십대후반의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