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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n 17. 2019

칼퇴하는 여잔 다 예뻐

야망도 욕심도 열심히도 없어요


수많은 경험들로 인해 쌓인 자신감만큼이나 커다란 공포증도 함께 동반된 채로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겉으로는 느긋하게 행동했지만 꼭 2년 만에 다시 출근하는 아침에는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생소함을 만끽했다. 나는 적응력이 좋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금방 적응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출근한 지 일주일이 되도록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칼퇴근이라 불리는 정당한 나의 퇴근이 어색했다. 정시퇴근을 약속하고 연봉을 반절이나 줄였지만 여섯 시 땡 하자 퇴근을 한 적이 첫 취업 이래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땡 하면 일어나는 패턴이 어서 익숙해지기를 고대하며 매일 칼퇴근을 사수했다.


출근 일주일이 지난 어느 이른 저녁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내가 회사원으로 봐온 중에 가장 밝은 얼굴이라고 했다. 오늘따라 예뻐 보인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연봉은 두배나 높았지만 웃음을  반절로 아끼던 과거의 회사원이 아니라 기쁨을 아끼지 않고 마음껏 웃어 보이는 내가 있었다.


친구와 밥을 먹고 회사 근처를 조금 걸었다. 초저녁의 공기가 달았다. 연애를 하지 않아도 공기가 달다니, 초저녁 바람이 이렇게 시원했나 싶었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해서도 여덟 시 반, 비실 비실 웃음이 세어 나왔다. 나 웃고 있니? 세상에. 돈은 못한 걸 칼퇴가 해냈다. 나를 웃게 만들었다. 해가 밝은 시간에 귀가하는 큰딸이 어색하다는 엄마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야근후 새벽녘에 택시를 탈 때마다 엄마는 걱정이 돼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 밤들을 보낼 때마다 나는 "삶이 고작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에 깊은 밤 아름다운 한강의 야경도 마다하고 질끈 눈을 감았었다.


회사원인 내가 웃는다. 칼퇴 만으로도 나는 웃으며 회사를 다닐 예정이다. "부디 오늘도 무사히"라는 간절한 기도 따윈 필요 없는 아침을 맞을 것이다. 때때로 비가 오거나 천둥번개가 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괜찮다. 그동안의 회사는 거의 허리케인의 날개쯤에 존재했기에 때때로 내리는 장대비 정도는 조금 버텨볼 생각이다. 오래 다니게 해 달라는 기도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하루만이라도 즐거운 회사원이었다면 그걸로 나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야망도 욕심도 열심히도 없다. 그저 행복한 회사원으로 내일도 웃을 것이다.




쓰는 아도르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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