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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l 30. 2019

저녁시간을 돌려받고 나서야

출근길에 웃음이 났다

낮에 퇴근하는 기분, 정말 좋다

과거에 나의 출근길은 절망을 마주하는 시간이며 타인의 불행한 표정과 무거운 한숨을 보험 삼아 안도하는 시간이었다. 나만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마음으로 되뇌며 지옥철 한 칸에서 쉬어지는 한숨의 개수를 세어보곤 했다.


퇴근길에는 이 지하철 안에 한 자락 한숨이라도 보태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생각했다. 립스틱을 꺼냈다가도 덧발라져 닳아지는 게 아까워 다시 가방 속으로 넣곤 했다. 야근이 일상이 되어 립스틱조차 바를 필요가 없는, 힘듦을 어필하는 얼굴이 기꺼이 되어 보이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야근과 밤샘이 일상이어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 온 얼굴로 "지금 내 삶은 의미 없음"을 표시하고 다녔다.


그런 내가 출근길에 웃음이 나고 퇴근길에 무겁지 않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나보다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더 신기해했다. 엄마는 날이 환할 때 퇴근하는 내가 어색하다고 했고 친구는 칼퇴근 아니 '정시퇴근'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예쁘게 만드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동생은 좀비가 인간으로 거듭난 것 같다고 했고 평일 저녁에 먹고 싶은 메뉴를 함께 요리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회사원으로서 13년 만에 저녁을 돌려받았다. 이렇게 멀쩡한 멘털로 회사를 다닐 수도 있다는 걸 회사원 13년여 만에 알게 된 것이다.

 

내 생에 최고점의 연봉을 찍었을 때를 떠올렸다. 근로계약서를 쓰던 그 순간의 짜릿함은 불과 몇 분 유지되지 못한 채 거대한 무게의 책임감이 내 두 손에 쥐어졌다. 높은 연봉만큼 너를 불태워 회사를 빛나게 해 달라던, 아랫사람들의 부족함을 엄마처럼 모두 떠안아 리더십 있는 팀장이 응당 되어줄 것을 요구하던 사장의 얼굴이 함께 떠올라 조금 오싹해졌다.


감기 기운이 있어 기분이 좋지 않다며 엔터키를 공격하던 김대리, 험악한 분위기 조성을 자제할 것을 당부받았다고 되려 팀장의 자질을 지적하던 아무개 사원도 덩달아 떠올랐다. 나는 그들의 엄마도 팀장도 되어줄 수 없었고, 그 이후 나는 '팀장'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무조건 모든 걸 감내하기만 하고 나 혼자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되어주기만 하는 게 리더십이라면 나는 그 리더십과는 무관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그 불행함을 내려놓았다.


마음속을 분노와 인간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채우고 회사를 다녔던 나는 더 이상 공간이 없을 만큼 가득하게 분노를 채우고 나서야 회사원이기를 포기했고, 마음속 그것들을 다 비워내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말끔하게 마음이 비워지니 자연스레 다시 회사원이 되기를 희망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출근길에 한숨의 개수를 세어보지 않는다. 퇴근은 곧 올 것이기에 출근이 괴롭지 않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한 달을 보내면 조그마한 월급을 받을 수 있기에 마음이 순해진다. 내 마음이 순해져서인지, 내 인생의 복병들이 이제는 끝물이라서인지는 모르지만 함께 일하게 된 동료들도 모두 마음이 순하다.


팀장이 아니어도, 리더십이 없어도,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작은 월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저녁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 먹을 것이다. 나의 저녁을 돌려받고 나서야 나는 웃으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






쓰는 아도르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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