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때까지 수집하며 사는것
내 글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 하는것, 그건 마치 회사에서 내가 언제라도 잘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기분이었다. 초조해 하다보면 내가 가진 좋은것들 보다는 부족하고 못난것에 더 집중해서 생각하게 된다.
초조한 마음에 사람들의 피드백을 모두 귀담아 들으려고 하니 그 말들이 모두 마음에 가라앉아 틈날 때마다 기억이 났다. 어떤 말을 곱씹는건 내가 원하는 결과로 가는길을 방해한다. 지나친 겸손과 배려에 대한 노력으로 모든 이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했지만 그 이후 나는 글을 잘 쓸 수 없었다. 누가 작가라 불러주든 불러주지 않든 제일 먼저 내가 나를 ‘작가’라고 생각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책이라서 읽었지, 고쳐주고 싶은 부분도 많았다는 말을 듣고 “아니 그런거 말고 장점은요?”라고 되물었다. 나를 아끼는 사람의 솔직한 의견 이었지만 대화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 그 말이 곱씹어지는걸 보면 아마도 나는 ‘쿨한척’을 했던것 같다. 모든걸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말이다. 누가 뭐라든 상처 받지않고, 누가 미움을 표현해도 신경 쓰지 않는 프로다운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었나보다. '싹싹하진 않아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책을 출간해놓고도 늘 싹싹해지려 노력했달까.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상처받고 조금씩 마음에 앙금이 남으면서 살아간다.
나는 왜 그 간단한 진실을 외면하고 사람들의 ‘아닌척’에만 속아서 자꾸 내 자신을 괴롭히는 걸까. 내 책이 조금 부족하고, 누군가의 눈엔 고쳐주고 싶은 부분이 많다고 해도 분명 나라서 할 수 있었던 이야기이고 나여서 쓸 수 있었던 글들인데 말이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말하고 싶은대로 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때로는 작가였다가 때로는 회사원이었다가 때로는 캘리그라피작가로 소개할 수 있는 나를 자랑스러워 하겠다. 너무 오랜시간 겸손이 미덕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살아왔던것 같다. 겸손에 찌들려 있는 나니까 덜 겸손해도 조금쯤은 겸손이 남아있겠지?
아직도 내 자신에 대해 조금씩 깨닫고 알아지는게 신기하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내가 많다는게, 또 어떤 새로운 상황에서의 새로운 나를 알 수 있다는게 좋다. 나는 아직도 나를 수집하고 있다.
이문재 시인의 “밖에 더 많다”라는 시가 있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내 안에도 많지만
바깥에도 많다
현금보다 카드가 더 많은 지갑도 나다
삼년 전 포스터가 들어 있는 가죽 가방도 나다
이사할 때 테이프로 봉해둔 책상 맨 아래 서랍
패스트푸드가 썩고 있는 냉장고 속도 다 나다
바깥에 내가 더 많다
내가 먹는 것은 벌써부터 나였다
내가 믿어온 것도 나였고
내가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도 나였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안데스 소금호수
바이칼 마른 풀로 된 섬
샹그리라를 에돌아 가는 차마고도도 나다
먼 곳에 내가 더 많다
그때 힘이 없어
용서를 빌지 못한 그 사람도 아직 나였다
그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한 그 사람도 여전히 나였다
돌에 새기지 못해 잊어버린
그 많은 은혜도 다 나였다
아직도
내가 낯설어하는 내가 더 있다
나를 수집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것은 결국 '글'이었다. 먹는것에도 내가 있고, 입고 쓰는 물건들에도 내가 있다. 그 모든것들에 있는 나를 글로 쓰며 수집하는 중이다.
쓰는 아도르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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