넵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여” 헛 오타다. 내 이미지에 “세여”체는 있을 수 없지. 얼른 ‘여’ 자를 지우고 ‘요’로 고쳐 쓴다. 그놈의 체면, 이제 작가 체면까지 하나 더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카톡 생활, 신경 쓸 거리가 하나씩 늘어간다. 가끔 아니 자주 카카오톡을 지우고 싶은 심정을 늘 뒤로하고 오늘도 대답한다. “넵, 감사합니다 :)”
카카오톡의 말투나 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카톡 생활. 프사나 상태 메시지를 바꾸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자주 바꿔도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으로 오인할 수 있으니 바꾸고 싶어도 최소 한 달에 한 번 정도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심심할 땐 바뀐 카톡 프사나 상태 메시지를 보며 그 사람의 안부를 점쳐보기도 한다.
나는 단어 뒤에 느낌표를 자주 붙이는 편이다. 왠지 문장에 의지를 더한달까. 활기차고 밝은 사람으로 보이는 효과도 있다. 단점은 늘 붙이다 한번 빠뜨리면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시나요.. 기운이 없어 보이세요ㅜㅜ”라는 말을 듣기도 하니 조심해야 한다. 활기는 일관되게, 느낌표는 빠뜨리지 않는 걸로.
물결무늬는 또 어떠한가. ‘물결무늬를 쓰면 아재’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이후 매 문장마다 물결무늬를 지우는 나를 발견했다. 아재가 되든 꼰대로 불리든 내가 편한 대로 살겠다는 나의 의지는 이토록 물렁해서 푹익은 홍시처럼 섬세한 충격에도 터지고 찢겨 속내를 드러낸다. 분명 내 손안에 있었던 잘 익은 빨간 의지는 그렇게 또 사라진다. 아재로 분류되긴 싫은가 보다, 내 마음.
카카오톡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선택권이 있었다. 카카오톡을 쓰는 사람, 쓰지 않는 사람. 카카오톡을 다운로드하고 카톡 생활에 합류한다는 것은 왠지 눈부신 문명 속으로 합류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한민국 온 인류가 카카오톡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간과했다. 편리함 뒤에 숨은 ‘혼자 있을 권리’ 말이다. 간과된 혼자의 권리는 ‘안 읽음’으로 애써 달랜다. ‘읽씹’보다는 ‘안 읽음’이 훨씬 낫기에 ‘1’을 애써 외면한다.
어느 날 “급해서 카톡 드렸는데 대답이 없으시더라고요ㅜㅜ”라는 카톡이 왔다. 15분이나 늦게 확인해 급한 마음에 얼른 전화했다. “아니 급하면 전화를 하지 그랬어”라고 말하니, 급했는데 그냥 알아서 해결했다고 한다. 머쓱해져 “아 다행이네.”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조금 당황했다. 나도 카톡 생활을 본격 시작한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당황케 했을까 생각하니 “휴...”하고 한숨이 터져 나온다.
우리는 언제부터 카카오톡 뒤에 숨게 되었을까. 왜 직접 전화를 걸어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전화를 건 사람이 이 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아니면 굳이 육성으로 대화하지 않아도 나의 메시지를 전달해 줄 선택지가 늘어나서일까?
언젠가 엽기적인 이모티콘을 말과 말 사이에 줄기차게 사용하는 소개팅남을 만난 적이 있다. 귀여운 꿀벌의 뱃속에서 괴물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김정은이 박수를 친다거나 이마에 칼이 꽂히기도 했다. 소개팅남은 외모도 키도 훤칠했다. 하지만 마음이 가지 않아 카톡 대화창을 거슬러보니 가관이었다. 나는 대화창을 후배에게 보여주며 “이 남자 어때?”라고 물었다.
카톡을 정주행 하던 후배가 대답했다.
“언니!!! 이 아저씨 이상해요.... 읔 만나지 마요. 이런 이모티콘 친구들끼리 개드립 칠 때나 쓰는 거죠!!”
슬기로운 카톡 생활의 정점은 바로 단톡 방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왼쪽으로 밀면 나오는 [읽음]과 [나가기] 화면을 띄워보는 단톡 방이 있다. 수개월째 아무 말이 없는 방이거나 확인하기 싫은 말들만 오가는 방이다. 그중 최악은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도 개의치 않고 알람이 울려대는 회사 단톡 방이다. 업무시간에 카톡 보기를 돌처럼 하라는 부장님께선 업무시간, 주말, 공휴일, 휴가를 개의치 않고 언제든 새로운 단톡 방을 생산해 내신다. 부장님은 단톡방이 몇 개일까? 날마다 몇 개씩 단톡방을 만들어 퇴근후에도 메시지를 보내신다.
"미안한데.. 지금 좀 확인해줄 수 있어?"
‘읽지 않음’으로 애써 나의 시간을 주장해 보지만 어쩐지 찝찝하다.
업무시간에 날아온 쪽지에는 이런 공지사항이 있었다.
업무시간에 카톡, SNS, 블로그, 인터넷 금지
회사란 일하는 곳이니까 눈치 보이는 짓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몇 시간 후 이사님께서 카톡을 보냈다. “6층에서 회의하니까 올라와!” 마침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던 와중에 바로 카톡을 확인했고 “넵!”이라 대답한 후 6층으로 튀어 올라갔다. 이사님이 나를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핸드폰 하고 있었나 봐, 보내자마자 바로 왔네!”
아뿔싸... 슬기로운 카톡 생활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해 바로 대답한 꼴이라니, 나의 행동이 후회됐다. 이런 바보...
찝찝한 마음을 생산해내지 않으려면 우리, 슬기로운 카톡 생활이 필요하다. 그런데 슬기로운 카톡 생활이란 뭘까. 이제는 생활이 되어버린 노란 말풍선이 오늘도 쩜쩜쩜.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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