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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Aug 11. 2020

야, 우아한 싱글이란 건

진짜로 우.아.한 싱글이 될 수 있을까 싶다


TV프로 [나 혼자 산다]는 싱글들의 다양한 일상을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중 가수 손담비와 여러 여배우들로 구성된 싱글 친구들의 일상이 특히 눈에 띈다. 내 나이 또래의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고 함께 여행을 가거나 때로 서로의 이사를 돕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부모님도 함께 신경 써 챙기기도 하고, 무슨 일이 생기든 필요로 할 때에 서로의 일상에 나타나 준다. 언제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너무 부러웠다.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크고 많은 꿈을 꾸며 살아가진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건 지금 먹고 싶은 것을 함께 먹을 사람, 여행을 가는 것,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것 등 아주 사소하지만 알고 보면 삶의 전부인 그런 것들이다.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결혼이란 제도나 보이는 모습보다는 언제든 무엇이든 함께 할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럽다. 그런 의미에서의 결혼이라면 굳이 비혼 주의를 들먹이며 마다하고 싶지 않다. 결혼을 아직 안 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딘가 한쪽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에는 이제 그다지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도 하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그런 이유에서 결혼을 못한 게 아니니까.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일상의 전반적인 일들을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는 언제고 기분이 시무룩해지곤 한다.


친구 중에 모든 대화의 끝을 “결혼하지 마”라는 말로 끝내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항상 지금 자신의 삶이 불행하진 않지만 ‘출산을 여자가 하는 이상 결혼이란 건 모든 여자에게 마이너스’라는 지론을 펼친다. 하루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병원을 가야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날 저녁 걱정이 돼 전화를 했더니 둘째가 생긴 줄 알고 허겁지겁 병원엘 갔더라는 것이다. “아깐 둘째 생긴 줄 알고 기절할 뻔했어. 야 게임이 재미없어, 티비가 재미없어?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마음껏 즐기고 살아. 결혼은 절대로 안돼” 친구의 결혼하지 말란 말은 결혼한 사람들이 으레 하는 투정쯤인 줄 알았는데 친구는 매우 심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투정 일지 몰라도 자기 말은 믿어도 된다며 극구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행하지 않다면서 왜 그렇게 하지 말란 건지.


결혼한 사람들을 만나면 늘 듣는 이야기가 있다. "우아한 싱글이 좋지, 넌 절대로 결혼하지 마", "멋지게 일하고 언제든 친구들도 만나고 놀 수 있잖아! 그렇게 사는 게 훨씬 멋져"  확실히 자유롭긴 하다.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으니 마음의 짐이 이제는 조금 늙으신 엄마뿐이다. 그것 외엔 사람들이 말하는 우아한 싱글이란 건 티브이 속에서나 나오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맨날 하는 말이 있다. “이왕 혼자 살 거면 돈이라도 많이 벌지 그랬냐? 이것저것 다 없는데 돈이라도 있어야 혼자 살지” 결정적으로 나는 우아한 싱글을 보내기엔 돈이 없다. 그리고 이제 함께 놀아줄 싱글 친구가 없다. 티비 속에서 처럼 언제든 서로를 챙기고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우아한 싱글로 반짝거리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언제든 연락할 친구가 있다는 게 결혼보다 힘들다. 마음이 잘 맞으면서 인생의 가치관이 같고 서로 능력이 있어 함께 사십 대를 보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결혼할 남자를 찾는 것 보다도 더 힘들다는 말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외로운 게 뭔지 잘 몰랐다. 각자의 앞날에 대한 고민도 언제든 들어줄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기 때문에 외로움의 깊이가 그리 깊어지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한꺼번에 사라진 사람들의 자리가 점점 공허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퇴근 후나 주말, 처음으로 심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넷플릭스를 결제했다. 여자지만 쇼핑 세포는 없다던 내가 필요한 것도 없는데 계속 뭔가를 사게 됐다. 쇼핑을 왜 하는지 처음 알았다. 게임이며 웹툰, 책 구독을 섭렵하고 십 년이 지난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을 해도 모자란 날에는 창이 큰 카페로 가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한 시간이고 쳐다보기도 했다.


모든 대화의 끝을 결혼하지 말라는 말로 끝내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날씨가 좋아 커피를 한잔 사서 선유도공원엘 갔다. 그날도 역시 친구는 주변에 사람들도 많고 늘 즐기며 사는 내가 부럽다며 결혼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우아하게 싱글로 살라고 했다. 울컥한 나는 말했다.


“야 너 결혼하고 우리 일 년에 몇 번 보냐? 한번? 내 모든 아는 사람들이 지금 딱 그래. 다들 자기애 키우느라 날 볼 시간이 없어. 난 엄마의 기분은 모르지만 이 나이에 혼자인 기분은 알아. 게임도 재미없고 사랑노래도 개짜증나. 좋아하는 영화 몇 개 빼놓곤 다 재미도 없어. 이젠 아무거나 재밌지가 않더라. 즐기며 사는 게 뭐야? 예전엔 즐거웠던 대부분의 것들이 이제 다 시시해. 나는 이제 어떻게 혼자인 나를 먹여 살릴지, 혼자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최대한 찌질 해 보이지 않게 혼자서 어떻게 이 외로움을 견딜지, 그런 것 밖에 생각할 게 없다? 나는 친구가 보고 싶은데 친구 만나면 친구는 애기 얘기만 해. 나만 이해해야 돼. 육아는 힘드니까. 근데 싱글이 힘들다고는 왜 생각 못해? 나도 이해받고 싶고 나도 내 얘기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출산 육아 하지 않는다고 모든게 다 별 일 아닌건 아니라고. 니네들은 나더러 애 안낳아봐서 뭘 모른다고 하는데, 니네들은 오랫동안 싱글로 안살아봐서 몰라.


밥 혼자 먹는 거에 익숙해지는 거, 여행 같이 갈 사람 없어서 혼자 여행 다니며 득도하는 거, 왜 결혼 안했냐는 질문에 매일 대답하는 거, 외로운 거 티라도 안나야, 인생 즐기며 사는 척해야 그나마 한 자락 자존심이라도 건지는 거, 그게 우아한 싱글인 거야. 우아는 개뿔 우와다 우와!! 알겠냐?"


친구는 결혼하지 않은 40대 언니에게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힘들어 무작정 나를 부러워했다고 했다. 남의 맘 모르는 남처럼 굴어서 미안하다고, 너도 진짜 힘들겠다고 하며 맛있는 저녁을 사주었다. 그 이후 친구는 다시 결혼하지 말란 말은 하지 않는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힘들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보이는 것의 이면에 숨겨진 많은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삶에선 언제나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고 자신의 힘듦이 가장 무겁다. 가장 크고 무거운 문제들이 언제나 내 앞에 있어 다른 사람의 이면까지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 지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저 자신이 가지 못한 그 길들이 반짝거리고 우아해 보일 뿐이다.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않는 사람들의 길이 조금 덜 우아할지도 모른다. 소수라는 건 언제나 ‘나만 이상한가’의 늪에 빠지기 쉬운 약자이므로.


그래도 이왕 지금까지 싱글로 사는 거 우아한 싱글이 되고 싶다. 보이는 것만 그런 게 아닌 진짜로 우. 아. 한 싱글 말이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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