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쌓이면 겁쟁이가 되나요?
지나간 것들을 들춰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번 본 영화는 다시 보는 법이 없고 한번 끝난 관계도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세상에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데 지나간 것에 얽매여 시간을 낭비한다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추억으로 살아간다는 말도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버린 과거에 도대체 무슨 힘이 있다는거야” 다양한 경험이 많이 없었던 어린 나에게는 인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들이 있었고 늘 자신감이 넘쳤었다.
시간이 흘러 회사에서 팀장으로 불리던 어느날 나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이제는 과거가 되버린 여자를 그리워 했다. 뺨이라도 한 대 날리고 싶을만큼 무례한 행동을 하는 어린 직원에게 말 한 마디 못했다. 죄없는 주먹만 부들부들 움켜쥐고 ‘딱 한번만 미친년이 되고싶다’ 라는 생각만 반복하다가 이내 미친년이 되기를 참고야 마는 내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무례한 행동에 대한 화가 아니라 죽어도 미친년이 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맞다고 생각하면 얼마든 미친년이 될 수 있었던 그 여자는 이제 사라진 것이다.
어느날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길 지하철에서 오늘의 밥값이 얼마나 아까운지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나를 발견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 사람 나쁜 사람이면 어쩌지?’ ‘지금 내가 보는 모습과 다른 사람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을 하면서 나쁜 상황부터 대비하는 나를 발견했다. 거저 속아 물건이고 마음이고 터무니 없이 들여왔던 나는 이제 본능적으로 다시 속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관계에 의해 슬프고 싶지도 않았다. 무지렁이 같았던 과거의 나를 부지런히 비웃으며 더이상 사소한 후회도 하기 싫어 수시로 마음을 바삭하게 말리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좋을지 나쁠지 생각하다 동작이 느려진다. 주저하다 결국 포기한다. 끝까지 고집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찾아내고야 마는 나였는데 이제는 포기 하는 것이 더 안심이 된다. 경험이 쌓이니 자꾸 코앞의 미래를 걱정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제는 수많은 정보와 경험에 묶여 좋은것 나쁜것 새로운것 가리지않고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내가 되었다. 겁쟁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예외 없는 인생은 안전할지 몰라도 공허하다. 요즘 나는 사는게 너무 재미없다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이렇게 겁이 많아지고 마음에 안전한 공허가 생기는게 사십대로 가는 관문이라도 되는건지 친구들도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이제 모든게 다 시들시들해
새로 시작하는건 무섭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것도 귀찮고.
인생의 노잼시기가 시작된걸까?
일단 무모하게 시작하고 보는 내가 그리운 날이 있다. 낯선 곳 낯선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무조건 믿어보고 싶은 날. 그런 무모한 믿음이 인생 사이사이 끼어들어야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일들이 생긴다. 이제는 어떻게 무모해질지 고민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지만 이대로 안전한 공허를 지속하며 점점 더 노잼이 되기는 아쉬웠다.
더이상 미친년이 될 수 없다면 가끔 정도는 일부러 무모해지기라도 해야하는게 아닐까?
심슨이 말한다.
멍청한 모험이야 말로 삶을 살만하게 해주는거 아니겠니!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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