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즐기고 있더라, 혼자 걷는 시간
세상에 죽음의 공포가 번져나갔던 시간 동안 우리는 비로소 떨어져 지낼 수 있었다.
거리를 두지 않았던 일상 속에선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 전시에 굳건한 마음이 자주 흔들렸다. 나만 이 자리에 있는 건 아닌가 외롭기도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는 찰나의 행복 전시가 무의미해졌다. 오로지 나와 가족의 안위에 집중했고, 오늘 하루 무사함에 감사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봉골레 파스타 하나가 오늘의 유일한 이슈인 헐렁한 하루를 보내도 괜찮아서 너그러웠다.
처음엔 너무 많이 생겨버린 혼자만의 시간이 무료해서 퇴근 후 지하철역 두 개 정도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매일 혼자 걸으며 저녁시간을 보낸 지 2주가 지나니 생각보다 즐거웠다. 오늘 퇴근시간에는 무슨 음악을 들으며 어느 길로 가볼지, 어디에서 잠깐 앉아 쉴지, 저녁은 뭘 먹을지, 그날그날의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그렇게 가다 보면 지하철역 4개는 거뜬히 걸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생각하며 혼자 걷는 것은 마치 새로운 여행지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도 들게 했다.
월요일엔 바나나 주스와 조미 달걀 두 개를 먹고 다이어트를 하는 기분을 냈고, 화요일엔 딸기 바나나 주스와 내가 좋아하는 에그드랍을 먹었다. 수요일엔 길거리에 흐드러지게 떨어진 벚꽃이 예뻐 선유도가 보이는 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온 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 목요일엔 언니와 통화하며 걷다가 갑자기 먹고 싶어 진 팥시루떡을 찾아 골목길을 헤맸다. 바로 옆동네였지만 가보지 않은 곳은 새로웠다. 그리고 오늘은 새로 생긴 파스타 가게에서 봉골레 파스타를 먹고 마트에서 시음한 맛있는 와인을 한 병 사서 집으로 왔다. 매일매일 4-5킬로를 걸은지 3주 정도가 지나니 ‘오늘의 걷기’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많은 표정, 매일 떠오르는 색다른 저녁 메뉴, 전엔 몰랐던 예쁜 풍경들이 무료한 내 저녁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냥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예전의 퇴근길은 언제나 피곤하고 무료해 SNS 속 사람들의 소식을 굳이 확인해가며 나의 불행함을 확인했다. 와인 한 병 살 시간은 커녕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에 도착해 해야 할 일들을 했다. 내가 선택한 삶을 살면서도 나만의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다. 나만의 삶을 살겠다고 매일 마음을 먹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과 거리를 두면 왠지 외로워졌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 채 남들이 사는 대로 휩쓸려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내 인생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우리에겐 너무 필요하다. 아무리 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보게 되는 다른 이들의 행복 전시가 내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도록 내 인생에만 집중하는 시간, 내 즐거운 일상이 필요하다. 이문재 시인의 시처럼 밖에도 많은 나를 수집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는 시간, 온전히 나만을 위해 걷고 먹고 사고 살아가는 시간 말이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강제로 갖게 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남의 인생과 내 인생 사이의 거리두기는 언제든 필요하고 중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은 외로움이 1%, 밖에도 많은 자신을 수집하는 시간이 99%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과 즐거움에 포커스를 맞추며 일상을 보낸다면 외로움이 99%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은 1%가 된다.
다시는 온 인류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공포의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의 자신의 일상을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이러스나 다른 좋은 인생에 휘둘리지 않게 자신의 두발로 각자의 삶을 걸었으면 좋겠다. 우리 주변에 원래 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가장 소중하단 걸 인지하고 각자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는 튼튼한 마음이 어떤 위기도 이겨내게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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