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도 그런 일이 있어?

그런 일은 시대의 흐름도 비켜가나 봅니다

by 아도르
요즘 세상

요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믿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은 오기나 할까.


출근길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인 나에게 단골 카페가 하나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이스 라떼를 주문하고 지각하진 않을까 초조하게 시간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 출근시간이 조금 이른 편이라 카페도 막 문을 연 상태였는데 갑자기 들어온 남자 한분이 돈을 던지다시피 내고는 "아메리카노 아이스로"라는 말을 던져버리고 나를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던져진 또 하나의 말 한마디는 "이거 좀 열지?"였다. 잠겨진 노천 좌석의 문을 열어달란 거였다. "네 바로 열어드릴게요"하고 내 눈치를 한번 살피던 카페 여직원분은 곧바로 열쇠를 챙겨 문을 열어주고 다시 돌아와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뭐지, 카페 사장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내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던 찰나 싸구려 말 한마디가 더 던져졌다. "그거 뭐냐, 플라스틱 컵에다 담아줘. 나 담배 한 대 피고 조금 있다 나갈 거니까!"


썩은 우유를 마신듯한 표정의 바리스타 분과 못 볼 것을 봐버린 표정의 나는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고 입장만으로 두 사람의 기분을 언짢게 했던 그 남자는 유유히 흡연실을 찾아 계단을 저벅저벅 올라갔다. 침묵을 깨고 말을 꺼낸 건 나였다. "혹시 저분 아는 분이세요?"라고 묻자 그녀는 마치 자긴 범인이 아니라는 듯 화들짝 놀라며 "아니요! 오늘 처음 뵌 손님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나의 몇 가지 추측은 허무하게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왜 반말을 하시냐고 따져 묻지 않았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 "지난번엔 저를 찍는 몰카범도 있었는데 동영상 지우라고 하니까 오히려 저를 관종 취급하던데요? 그리고 도망갔어요. 그 후로 누가 핸드폰만 들고 있어도 저를 찍는 것 같고 혼자 있을 때 손님이 오면 겁부터 나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냐거나 제가 예민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해요. 그게 더 속상해요!"


아니 왜 반말은 하고 지랄이야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 마디였다. 사소한 문제라 해서 매번 넘어가기만 하는 게 영 탐탁지 않은 세상이다. 작은 문제일수록 바로 잡아주고 싶었다. 이럴 때야 말로 나의 또라이 기질을 사용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해서 따져 물으려는 순간 그가 말렸다. 반말하는 걸로 문제를 삼을 거면 매일매일이 싸우는 삶일 거라며, 몰카범은 자기 손으로 꼭 잡아보겠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르는데 겁도 없으시다고 말하면서.


카페를 나서며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일하는 장소에서 시종일관 십 원짜리 욕지거리로 주변 사람들의 넋을 다운시키는 사람에게 똑같은 수준의 말로 되갚아주는 장면이었다.

-적당히 해라. 시끄럽잖아? 여기 시끄러운 새끼 너밖에 더 있냐?
(감독 : 어.. 그러네.. 넌 뭔데? 미친년이야?)
-아는구먼 뭘 물어봐? 그래 나 미친년이다 이 개새끼야.
너 저분 보고 개새끼라며? 같은 종 아니야? 넌 달라? 넌 뭐 개 쓰레기 새끼냐?
여기 우리가 몰래 들어왔니? 허가받고 정당하게 일하고 있는 거야. 니가 걸리적 거린거라고!
어따대고 남의 귀한 자식한테 욕지거리야? 어따대고 사람을 개로 만들어?
사람이야! 귀한 사람이야! 니가 뭔데 지랄이야?
(감독 : 이 씨X)
- 이 씨 뭐?
(감독 : 이 개XX!!)
- 개새끼 뭐? 뭐!!!

드라마 [멜로가 체질] 중에서


드라마의 통쾌한 장면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당연히 해야 할 말 한마디도 무서워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다. 문제를 문제라고 짚어주고 싶다. 피곤하더라도, 예민하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말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곤 하는 요즘 세상에도 여전히, 번번이 일어나고 있는 이런 사소하고 기분 나쁜 일들 모두를 향해 그렇게 말하시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변했다는 요즘 시대에는 절대로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말이다. (요약:겁 없이 따져 묻고 싶다!!!!)


요즘 세상에도 무슨 일이든 종종 일어나고, 예민한 사람에게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두려운 일을 겪고 나면 비슷한 상황에서 예민해지는 거지, 예민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제발, 제발 좀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지 말았으면 좋겠다. 피해자를 그저 '혼자 예민해서 오버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에도 생긴다는 그 어처구니없는 일들 중에 대부분은 "아무 원인 없이"도 일어난다. 처음 본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이 예의가 없는 거고, 굳이 욕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 십 원짜리 욕으로 인신공격하는 사람이 개새끼인 거고, 몰카를 찍는 사람이 범죄자인 거다. 펭수의 말마따나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키는 사람이 나쁘다.


그렇게 좋아졌다는 "요즘 세상"에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지나치지 말자 '그런 일', 못 본 척하지 말자 '그런 일', 잘못됐다고 말 좀 하자 '그런 일'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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