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은 누가 누구를 무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게 아니다.
전 삼성맨, 대기업 출신 대표, 하버드대 수석 졸업생이 만든 모모모 등은 책을 펼칠 때마다 제일 처음 읽게 되는 프로필에 자주 등장하는 수식어 들이다. 생각해보면 서점에 위로의 물결이 파도를 치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유명하다는 책을 들춰보면 대부분의 프로필에 전 직장이 대기업이었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프로필들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행복에 대한 정의나 성공에 대한 인식들을 생각해보곤 했다. 때려치워도 대기업 정도는 때려치워 줘야 하는 말에 신뢰가 생기는 건지, 그놈의 대기업은 일괄적으로 표기된 한물 간 희망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대기업 출신이어야 창업이 쉽고, 수석 졸업생이어야 성공의 확률이 높은 걸까?
아니면 일류라 불리는 그들의 삶만 조명되고 있는 걸까?
정답이라 여겨지는 그들의 훌륭한 말이 왜 나에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지?
확신과 패기로 똘똘 뭉쳤던 시절 나는 면접 후 불합격한 회사에 이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귀사의 면접에서 불합격한 디자이너 이현진이라고 합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어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혹시 업무로 바쁘시다면 굳이 답변을 주지 않으셔도 좋습니다만, 한 젊은 디자이너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받은 불합격 메일에는 최종까지 저를 고민하시고 합격을 고려하셨지만 ‘4년제가 아니라서 부득이하게 최종 불합격됐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4년제와 2년 제로 합격 불합격의 당락이 결정될 만큼 정말로 전문대를 졸업한 친구들과 4년제를 졸업한 친구들의 실력 차이가 있는지]입니다.
이 질문은 불만에 근거한 질문이 아니라 저는 정말로 궁금하고, 알고 싶고, 부족하다면 어떤 부분을 보충해야 하는지,
결국 4년 제로 편입을 해야만 앞으로 제가 입사하고 싶은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 발전을 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커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인사담당자님께서 저의 발전에 도움을 주실 대답을 해주신다면 부족한 점들을 보충하여 좋은 디자이너가 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후 인사담당자는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저는 4년제 디자인과를 졸업했습니다만 현진 씨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현진 씨의 아이디어와 작업물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현진 씨보다 뛰어나게 우수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서 한 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최종까지 현진 씨를 고민했지만 기업이라는 특성상 저의 판단과 권한만으로 인사를 결정할 수가 없어 불합격되셨다는 설명을 드립니다.
이렇게 메일을 보낸 불합격자는 처음이라 저도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기억에 남는 면접자였던 만큼 인상적인 불합격자인 현진 씨께 고민후 이렇게 답변을 드립니다.
이현진 씨가 어떤 길로 가시든 무슨 일을 하시든 잘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혹시 제가 회사 밖에서 현진 씨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연락드려도 될까요?
저도 답변을 주시길 바라며, 현진 씨의 건승을 빕니다.
사실 메일을 보내 놓고도 괜히 쓸데없는 일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답변을 받고 질문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담당자님의 메일에 나는 또 답변을 했고 우리는 그 후 몇 번의 작업을 함께 했다.
나는 경쟁을 싫어한다. 타고난 이런 성향 때문인지 굳이 싸워서 이기는 성취감을 맛보기보다 나로서 즐거운 삶을 구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해왔던 것 같다. 욕심내지 않아서 가지지 못했던 번쩍이는 스펙들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다. 결국 되지 못한 변명과 열등감일 뿐이란 생각에 괴로울 때도 많다. 하지만 번쩍이는 그 모습이 부러운 건지 진짜 내가 원하는 건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다 보면 결국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을 거라는 결론이 난다.
각종 프로필의 ‘전 삼성맨’이라는 명함이 무색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을 이뤄나가며 자신 있게 사람들의 손을 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듯한 명함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타당하게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의 별 것 아닌 내 모습과 생각들을 소탈하고 솔직하게 글로 써나가고 싶다. 이렇게도 훌륭하지 않은 내가 바라던 것들을 하나씩 이뤄나가고 있다고, 행복은 바로 이런 거라고,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힘들 때마다 말해주고 싶다.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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