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데리러갈게
고장난 5호선 지하철로 영등포구청역은 인산인해, 40분을 기다렸지만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40분이나 더운 역사안에서 땀을 흘리고서야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나 사람지옥을 뚫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바깥상황도 그리 좋진 않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그 도로는 서울 안에서도 막히기로 손꼽히는 도로였고 한 정거장 전에 있다는 버스는 15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비오는 거리를 걸어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퇴근 후 한시간 반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고 노래를 들었다. 이런 날엔 이 노래다 싶어 에릭남의 [Good for you]에 푹 빠진다.
힘들었겠지 하루가 유난히 길었을거야
지금 내가 데리러 갈게
지쳐있을 네 모습에 또 바뀌는 빨간 신호등에 괜히 맘이 조급해
뭐든 다 말해도 돼 어차피 차도 막히는데 다 와갈 때 쯤 깨워줄게
달달한 목소리의 노래를 들으며 잠들었다. 정말로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군가 데리러 온다면 살 맛이 나겠다고 생각하면서.
살면서 생기는 힘든 문제 앞에 놓일때마다 평소에는 신경쓰지도 않았던 것들이 덕지덕지 내게 달라붙어 기분이 무거워진다. '나는 운이 없어', '세상은 불공평해', '나는 사는게 더 힘들어' 하고 투덜거리며 화를 내보지만 금새 접고 만다. 이젠 알기 때문이다. 더이상 어리광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을. 내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집으로 가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을.
30분이면 가는 거리를 2시간을 돌아 돌아 집에 도착했다. 앞으로도 어떤 날은 오늘처럼 돌아가야 할 것이고 그럴때마다 무거운 기분이 될 것이다. 그 때마다 나와 내상황을 탓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세상에 움츠린 내가 더 쪼그라들지 않을까. 나를 탓하지 말고 아무 것도 탓하지 말고, 그럴땐 그냥 이 노래를 들어봐야지. 내가 어디에 있든, 얼마나 험난한 길을 가든 데리러 올 사람은 없지만 내가 나를 데리러 간다고 생각하면서. 적어도 나만큼은 내편이 되어줄 것을 약속하면서 달달한 노래에 기대본다. 누구든 그렇게 힘을 냈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멋진 나임을 무조건 믿고.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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