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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an 19. 2021

내가 노력했으니 당신도 노력하시오

타인의 영역을 막무가내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다짐



“이거 너무 웃기지 않아요? 왜 안 웃어요?”
“넌 왜 안 슬퍼해? 이게 안 슬퍼? 참 이상하네.”
“넌 저게 무섭지도 않니? 표정이 왜 그래?”
“난 너희들이 내가 존경하는 만큼 대표님을 존경했으면 좋겠어.” 


가끔 사람들에게서 같은 감정을 가질 것을, 같은 노력을 할 것을 강요받을 때가 있다. 왜 그렇게 타인의 표정과 감정에 관심이 많은지 사람들은 같은 표정, 같은 감정을 가지라고 안달이다. 특히 웃는 일에는 더욱 그렇다. 오래전 어떤 라디오 사연에서 이런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하루는 조카가 방과 후에 집으로 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그러더란다. “이모, 어른들은 왜 자꾸 웃기지도 않는데 웃으라고 해?” 그 사연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나도 ‘웃음 지을 것’에 대한 강요를 많이 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넌 왜 그렇게 표정이 불퉁하니? 좀 웃고 다녀. 그래야 어디 가서 미움 안사지.” 나는 딱히 불퉁한 표정을 일부러 짓거나 하지 않았는데 약간의 하관돌출과 치아구조로 인해 종종 그런 얘기를 듣는다. 생긴 게 그런 걸 어떡하랴. 웃으면 복이 온다는 것도 알겠고,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는 것도 알지만, 내 표정은 내 감정에 기반을 둔 온전한 나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타인의 표정이나 감정, 노력들을 집단적 기준에 근거해 아주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른 자유의지에 의한 영역인데도 왜 너는 슬퍼하지 않느냐고 말하면 할 말이 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감정을 가진 존재라면 모두가 비통한 마음으로 분 노하고 슬퍼할 때 나는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프리랜 서를 찾다가 지인을 회사와 연결해 코워킹을 하던 중, 작업기한이 지났는데도 지인의 연 락이 없어 회사에서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묻자 그는 대답했다. 


“현진아. 넌 슬프지도 않니? 지금 나는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슬픔에 잠겨 있느라 작업 할 여력이 없는데 넌 어쩜 지금 같은 상황에 일 얘기를 꺼낼 수 있어? 난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목소리에 슬픈 기색 하나 없어? 너 정말 냉정한 애구나. 정 떨어진다 야.”

황당했다. 너무도 당당한 어투에 순간적으로 내가 너무 몰상식하고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슬퍼하는 중이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말 했다. 


“언니, 나도 세월호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고 슬프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일을 하는 것과 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요. 일이 손에 안 잡힐 수는 있어요. 하지만 슬퍼하는 방법은 각자의 선택 아닐까요. 이런 상황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진행한다는 이유로 언니에게 그런 근거 없는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통화가 끝난 후 꽤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일에 대해 자기가 느끼는 감정과 행동만이 정답이라 생각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그때의 일은 나도 타인에게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지 않으면 너무 쉽게 이상하다고 판단하진 않는지 검열하는 계기가 되었다. 


감정을 강요하는 것 외에도 노력이나 마음을 강요하기도 한다. 잘되길 바라는 관계가 생기면 그 관계가 잘 됐으면 좋겠고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며 기대도 커진다. 커지는 기대만큼 부담감도 커지고, 좋은 관계로 만들기 위해 지나친 노력을 하게 된다. 관계는 쌍방이 노력을 기울여야 발전하는데, 혼자서만 노력하니 점점 지치면서 나만큼 노력하지 않는 상대에게 실망하게 된다. 노력은 요구할 수도, 요구한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란 걸 알지만, 혼자만 애쓰다보면 내 마음과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에게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당신은 노력하지 않죠?’ 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어떤 관계를 위해 한쪽이 너무 희생하다 보면 희생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 희생을 바라보는 쪽도 지친다. 상대에게 자신과 같은 마음이기를 강요당하는 횟수가 늘어나면 부담스러운 마음에 오히려 그 관계의 거리가 멀어졌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는 것이다. 


마음과 감정의 소유권은 각자에게 있다. 즉 내 입장에서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할 수 없는 각자의 영역인 것들이다. 그러니 마음도 감정도 노력도 그에 따른 책임 또한 각자에게 있겠다. 내 마음은 나의 것, 타인의 마음은 타인의 것이라는 사실만 인정해도 나의 감정이나 노력을 강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불어 각자의 감정과 노력을 타인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보다 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감정과 노력을 강요하는 것, 타인의 영역을 막무가내로 침범하는 일이기에 내가 책임지지 못할 타인의 영역이라면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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