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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an 20. 2021

욕먹기 싫어서

그래도 욕은 먹기 싫다

세상에 욕먹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먹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먹어지는 욕이 싫어서 우리는 자꾸 노력을 한다. 좋은 말을 듣기 위해서도 아닌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앞뒤 없는 욕에 휘둘리긴 싫지만 자꾸만 흔들거리는 나를 똑바로 일으켜 세우느라 오늘도 나의 하루가 멘탈멘탈하다.


작년 여름 방송된 [캠핑클럽]이라는 프로는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가수 핑클이 모여 함께 캠핑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캠핑카를 타고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과정에서 그간의 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당시 그 방송을 보며 매우 공감했던 말이 있다. 핑클의 멤버인 성유리가 자신의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말했다. 

욕먹지 않으려고 20년을 살아온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는 동안은 그 노력의 모든 기준이 타인이 된다. 내 삶의 모든 것이 타인의 기준 안에서 정해지고 내 기분이나 감정마저도 저사람이 욕하지 않는 선에서 억제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 듣고 획 바꾸고 저 말 듣고 획 바꾸는 흔들거리는 삶을 지속하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걸까.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한 회사와 연속으로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 회사의 아이덴티티 컬러는 노란색이었다. 첫번째 프로젝트에서 담당자가 제공해준 컬러대로 작업을 했더니 노랑이 너무 차갑게 느껴져 회사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컬러값이어도 인쇄환경이나 종이질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음을 알기에 다음 작업에는 제공해준 컬러값을 사용하지 않고 노랑에 빨강을 조금 섞었더니 자기 회사 컬러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세번째 프로젝트때 다시 원본컬러를 사용했더니 왜 그렇게 줏대없이 오락가락하냐는 것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남의 말만 들어준다는 건 줏대가 없는거구나


디자인이란건 보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 문제라 그들의 말을 모두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공들여 만든 결과물이라 쿨해지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결과물을 보는 사람이 클라이언트나 권력자라면 그놈의 줏대를 세우기는 절대적으로 어렵다. 줏대와 수렴의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내는게 프로라는 생각에 오늘도 합의점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고민들을 한다. 한번은 내가 디자인한 결과물을 본 회사 대표님이 본인이 컨펌했지만 결과물이 이렇게 마음에 안들지 몰랐다며 나를 세워둔채 물류센터로 전화해 모두 불태워 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디자인과를 전공한게 맞아?”, “넌 정말 최악이야”, “우리 회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 “넌 정말 형편없구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싫을 수 있다. 얼마나 마음에 안들면 불태워 버리라고 했을까,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도 화가 난다고 이렇게 막말을 마구 해대나 싶었다. 대표의 책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떨군 내자신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형편 없는 사람인가’ 


20년 가까이 ‘수치심’과 같은 현대인이 겪는 불안한 감정에 대해 연구해온 브레네 브라운 교수는 [수치심 권하는 사회]를 통해 “수치심은 폭력만큼 위험하다”고 말하며 “죄책감과 수치심은 둘 다 자기평가에 대한 감정이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그 차이가 ‘나는 나쁘다’(수치심)와 ‘나는 나쁜 짓을 했다’(죄책감)라는 데에 동의한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만약 내가 먹은 욕이 “이번 프로젝트의 디자인이 별로야” 였거나 “이번일이 좀 만족스럽지 않다”였다면 나는 죄책감을 느끼는데에 그쳤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제대로 내 존재에 대한 욕을 먹은 느낌이어서 수치스러웠고 얼떨떨했다. 일단 다시 작업 하겠다고 말하고 사장실을 나왔다. 사장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엿들은 회사 동료들이 내자리로 몰려왔다. 괜찮냐고, 그는 원래 화가 나면 막말을 하는 사람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들도 꽤 충격을 먹은 모양이었다. 의외로 덤덤한 내반응에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지막지한 욕을 먹은 직후라 그런지 얼떨떨한 것이 이상하게 덤덤했다. 처음으로 멘탈이 강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으쓱했다. 수치심을 느낄만한 쌍욕을 먹고도 의연하다니, 나 많이 단단해졌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친구의 메시지 한 줄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는 내가 괜찮은줄 알았지만 그 충격적 단어를 내 온몸이 흡수하고 있었다는 걸 친구의 한마디에 알게되었다. 


야 그런 개소리에 단 1%라도 너를 의심하지마. 알겠지!!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쌍욕에 마음 한켠 내주는 것도 아깝다.
내가 알아 넌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나는 순간의 수치심으로 생각보다 더 큰 충격을 먹은 나를 애써 토닥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괜찮다. 욕 먹은 것 따위는 괜찮다. 그건 내잘못이 아니다. 그냥 그사람의 인성 문제일 뿐, 나는 진짜 진짜 괜찮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욕을 먹고 괜찮은 사람이 있을까?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다섯번도 넘게 정독했지만 결코 그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친구의 말처럼 그냥 그 욕에 내마음을 단 한켠도 내어주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욕먹지 않는 세상이야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근거 없는 욕을 먹어도 휘둘리지 않기를, 줏대를 딱 세우고 명확하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전에서는 ‘줏대’를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일컫는 말로, 자기의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풍]으로 정의한다. 어설프게 배려 한답시고 많은 말들을 다 수용하고 흔들릴게 아니라, 나의 줏대를 똑바로 세우고 그것을 지켜나가다보면 어이 없는 비난을 순간의 헤프닝으로 여기고 가뿐하게 지나칠 수 있을 것이다.


욕먹을 걸 알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욕먹지 않으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욕을 먹고야 마는게 인생이라면 아주 작은 것들부터 나만의 줏대를 가지고 내마음대로 해 볼 일이다. 책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는 “수치스럽게 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타인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다”라는 내용이 있다. 타인을 변화시킬 수 없는 무의미한 말들에 휘둘려 주눅들기 보다, 마음대로나 하고 욕을 먹으면 억울한 마음이나마 조금 덜하지 않을까. 오히려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했을때 더 자연스러운 결과가 생기는 경험을 하나씩 하다보면 욕을 먹어도 마음이 휘청거리지 않고 가뿐하게 내 갈길을 가게 될 것이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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