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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an 22. 2021

99.9퍼센트는 내 인생의 타인일 뿐

나에게 주어진 0.1%에 최선을 다 하는 삶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났다. 처음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땐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막막해서 주말이 올 때마다 고민이 됐지만 서서히 나만을 위한 주말을 보내는 법을 익혀갔다. 다시 회사원이 된 이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핑계로 평일 저녁에는 잠을,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는 것을 사수했지만, 감염이라는 바이러스가 가진 인류 최대의 난제 앞에서 기꺼이 나만의 주말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또 여름으로 계절이 두 번 변할 때쯤 나는 매일 걷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살기 위한 생존 체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삼십대의 끝자락이기도 했다. 다이어트를 핑계로 하루 만보 걷기를 시작했지만 5개월이 넘게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갑자기 어디서 뚝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공허한 시간들 때문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공허함 속을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엔 지치고 힘들었지만 지속해서 걷다 보니 걷는 동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심장박동, 호흡, 운동화 속 발의 열감, 통증이 느껴지는 곳 등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내 신체의 반응들에 집중하다 보면 심플하게 생각이 정리됐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 멈춰서 쉬어야 하고 무릎의 통증이 느껴지는데도 무리하게 걸으면 탈이 난다. 한낮의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도 마찬가지다. 걷거나 뛰면서 내 심장박동을 느끼다 보면 ‘아 오늘은 내가 무리했구나, 쉬었어야 했는데’하고 흐릿했던 고민이 뚜렷하게 정리가 됐다. 무리한 호흡을 싫어해 뛰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내가 가끔은 뛰어보기도 했다. 뛰면서 정리되는 생각들이 새로웠고 덕분에 생긴 마음의 빈 공간이 회사원인 나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까지 생겼다. 처음엔 퇴근길 복장 그대로 시작했던 걷기가 점점 운동복과 운동화를 갖춘 제대로 된 루틴이 되었다.


도로에서의 걷기란 위험천만한 일이다. 조금 빠른 걷기를 했던 날 자전거랑 부딪힐 뻔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는 건 부지기수였다.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운동할 장소를 찾다가 집에서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공원을 이용하기로 했다. 공원에는 항상 사람이 붐볐다. 여름이 오면서 날씨가 좋아진 탓에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은 점점 많아져, 걷거나 뛰다 보면 사람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공간에서 내 속도를 유지하면서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게 피곤한 날이 점점 많아졌다. 평생 규칙적인 운동이란 걸 해본 적 없는 내가 겨우 겨우 걷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또 새로운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가끔 따라나서던 남동생도 그 공원에만 가면 사람들을 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걷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쉽사리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무리해서 사람들을 피해 길의 가장자리에서 걷던 어느 날 나는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꽤 심하게 다쳤다. 그 후로 더 이상은 사람이 많은 곳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운동을 하면서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치여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자 운동 자체가 싫어진 것이다.


사람들과 씨름하며 억지로 관계를 노력하는 것은 평일에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주말만큼은 온전히 관계 속에서 해방된, 내가 원하는 시간을 보내자고 마음을 먹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지만, 한 달 내내 약속이 없어도 ‘관계에 뒤쳐질까’ 하는 쫄림을 받지 않아서 은근히 편안해진 참이었다. 편안한 차림으로 여름밤을 누리며 자유롭게 걷고 싶었지만 어딜 가도 사람들이 붐벼서, 실상은 누구도 내 차림과 생김새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사람들을 의식하게 됐던 것 같다. 집에서 입던 차림으로 나갔다가 혹여나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에, 걷기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하면서는 운동복도 여러 벌 구입했다. 많은 사람들 때문에 의식하게 된 건 복장뿐만이 아니었다. 숨소리, 속도, 경로, 움직임과 같은 길 위에서의 모든 것들이 신경 쓰였다. 한 번은 우리 엄마뻘의 아주머니께서 최저속도로 뛰고 있던 나를 굳이 잡아 세워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니 아가씨 다른 사람들 다 걷고 있는데 혼자 뛰면 어떡해? 아무리 공원이라도 말이야. 여긴 길도 좁고 돗자리 깔고 앉아있는 사람도 많은데” 그 공원에서 뛰고 있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지 역정을 내시는 거다. 납득이 되지도 않고 죄송한 마음도 들지 않았던 나는 “아 네”라고만 답한 후 얼른 공원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과 눈초리를 신경 쓰면서는 어디에서도 운동을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맛집, 핫플레이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피곤이 쌓인다.


여름의 공원은 자리싸움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곳에서 달리기를 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에 치여 내 속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매일 운동을 시작한 이후 저녁마다 가지는 나만의 시간이 좋았고 주말엔 좀 더 여유 있게 운동을 했지만 어딜 가든 사람에 치여 점차 나가기가 싫어졌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상관없는 많은 사람들을 의식하느라 내가 원하는 코스로 뛰지 못하고 있구나. 내 인생에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99.9%의 타인들을 의식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인생에서, 길에서 내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달리기를 한 번 하려고 해도 운동복, 날씨, 시간, 길의 평탄한 정도, 인파 등등 생각하고 고려할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에 아주 많은 일들을 해결하고 처리하며 각자의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매일 같은 길에서 99.99%의 수많은 타인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늘을 묵묵히 견디고 해결하는 일은 어쩌면 엄청나게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과 무관한 타인은 그 정도로 지나쳐 가는 게 전부일뿐인데도 그들을 신경 쓰느라 너무 많은 생각을 낭비하고 있다. 타인의 경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그저 묵묵히 각자 자신의 길을 가야 할 뿐이다.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내 길을 잃어버리거나, 내가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타인들과 마음 씨름을 하느라 지친다. 가끔 발을 밟거나 양해를 구해야 할지라도 이제는 나의 걷는 시간을 온전히 내가 원하는 길로 가고 싶다. 우리가 가는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의 인생과 무관한 99.9%의 타인일 뿐이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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