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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Feb 23. 2021

당신을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기분을 살피느라 내 기분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내 마음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화나지 않게 하느라 내 화를 다스릴 길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기쁘게 하느라 나는 지쳐 갔습니다.

당신을 만족시키느라 내 만족이 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너무 많은 날동안 당신을 위해 살아오느라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떨 때 행복한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독한 몸살로 누워서도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며 골머리를 끓이던 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회사의 부품인가. 나는 부품의 을인가. 아파서 생긴 하루의 휴가조차도 내일의 을 노릇을 위해 누워만 있어야 하는가.


 꿈을 꿨습니다. 꿈에서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딸기를 갖다 주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꿈에서 깬 후 딸기 한 바구니를 사다가 혼자 다 먹었습니다. '아 나는 딸기를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몇 년 만에 해보았던지요. 당신의 기분이 내 기분이 되고 당신의 말이 나의 하루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나를 잊어갔습니다. 딸기가 너무 맛있어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더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더 이상 분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지나간 과거는 생각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여행, 산책, 스피커, 아이스 바닐라라떼, 나무, 운동화...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납니다. 언제 이렇게 미소 지었나 떠올려보니 회사 속에서 쓰임이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쓰임이 있어야만 비로소 웃을 수 있는 부품이 아닌데도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부품을 자처해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직급이 올라가면 조금 나은 부품이 될 것 같아서', '월급 20만 원이 오를 테니까' 하는 보잘것없는 이유들 때문에 기계처럼 일 해 왔네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을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신은 쓰임이 있어야만 비로소 웃을 수 있는 부품이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의 온전한 인격이며 완전한 기분이며 유일한 마음입니다. 탄생만으로도 충분한 단 하나의 만족이고 최대의 기쁨입니다. 이 사실을 언제나 기억했으면 합니다. 유일한 나를 인정하는 것은 유일한 당신을 인정하는 것이고 유일한 모든 각자를 존중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쉽게 말 한마디 할 수 있을까요? 쉽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는

나의 기분을 살피기로 합니다.

나의 마음을 헤아리겠습니다.

나의 화에 관심을 가지고 다스려 보겠습니다.

나의 기쁨을 우선순위에 두겠습니다.

나는 어떤 것들에 만족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를 제일 많이, 제일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서른둘, 처음 팀장이 되었다. 처음엔 좋은 팀장이 되고 싶었고 다음엔 능력 있는 팀장이 되고 싶었고 그다음엔 그냥 이 구역 미친년이 되기로 했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팀원들에게 좋은 선배이면서 실력도 있고 위에서는 사랑받는 팀장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그 특별한 팀장이 되려 하면 할수록 아래위로 미움을 샀고 미움 속에서 눈치를 보느라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일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하루에도 백번씩 미친년이 되자고, 좋은 팀장이든 능력 있는 팀장이든 딱 하나만 미치자고 아무리 마음을 먹어봐도 출근카드를 찍는 순간부터 내 몸은 상사가 하는 말대로 움직였다. 그땐 왜 그렇게 잘릴까 봐 무섭던지, 왜 그렇게도 인정받고 싶던지.


그때 처음 위경련이란 걸 경험했고, 그때 처음 업무 도중에 나가버렸고, 그때 처음 몸이 아파 쓰러졌다. 몸의 병은 모두 마음의 병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의 마음과 능력을 모조리 써버린 그곳에서 나온다고 했을 때 갑자기 냉랭해진 사람들이 무서웠다. 나를 날마다 지옥에 빠지게 했던 실장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며 마음으로 말했다. 우리 살면서 다시는 마주치지도 말자고. 이렇게 갈 사람은 가고 버틸사람은 버티는 곳, 그런 곳이 회사였다. 그 회사를 나왔던 날 밤, 나는 이런 일기를 썼다.


나는 당신을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보다 직급이 높은 한 사람의 말이, 많은 사람의 말이 나에게 제일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건 나의 생각이고 내가 제일 걱정해야 할 건 나의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바로 당신 자신이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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