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지나가기
아침에 눈을 떠 창문을 여니 이틀 사이 부쩍 포근해진 바람이 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계절의 기분 좋은 변화를 인지한 다음 자연스레 내 눈길은 어젯밤 꽃병에 꽂아 뒀던 꽃으로 갔다. 순간 너무 놀랐다. 속내를 보이지 않으려 잔뜩 움츠리고 있는 듯 보였던 몇 송이 꽃이 밤새 활짝 피어있었다. “어쩜 저렇게 활짝 피어있더라. 저 꽃 이름이 뭐니, 너무 예쁘다.” 꽃을 보고 있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말처럼 꽃을 보니 나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활짝 핀 꽃봉오리를 본 게 얼마 만인지, 꽃 몇 송이도 가만히 바라보지 못하고 살았나 싶었다.
친구네 작업실에 놀러 갔을 때 들어간 순간 제일 처음 눈에 들어왔던 꽃이었다.
“어머 넌 작업실에 꽃도 꽂아 놓고 일하는구나. 너무 좋은 습관이다.”라고 내가 말하니 친구는 “아 그거 그냥 언니 주려고 사 놓은 거예요. 나중에 갈 때 까먹지 말고 가져가요!”라고 대답했다. 친구와는 그리 많은 교류를 하며 지내진 않지만 오랜만에 만나면 늘 이렇게 마음이 통한다. 어떤 이유도 덧붙일 것 없이 그냥 내게 주려고 샀다는 꽃을 받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은 내내 향기로웠고 여름밤 공기가 달달했다. 집에 도착해 그 꽃을 대충 꽂아 놨을 뿐인데 아침이 이렇게 근사해진 것이다.
그런 순간이 있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어른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많은 이해관계를 따지고 계산하며 살게 되었다. “그냥”이라는 말은 마법의 단어 같아서 좋아한다고 했던 나도 점점 “그냥”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생각나서,
그냥 주고 싶어서,
그냥 네가 좋아서,
그냥…
친구의 그냥 샀다는 몇 송이 꽃 때문에 나는 일주일이나 더 행복했다. 그리고 꽃이 질 때쯤, 가끔 꽃 몇 송이, 커피 한 잔, 작은 선물 하나, ‘그냥’ 선물하면서 살자고 생각했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선물보다 그냥 생각나서, 그냥 주고 싶어서 준비한 선물이 진짜 선물이란 걸 알게 됐으니까. 오래전 시집에서 봤던 문구가 떠오른다. “퇴근길에 그냥 생각나서 꽃 한 송이 사 들고 오는 남자라면 결혼해도 좋다.”라는 내용의 시였는데, 너무 오래돼서 자세한 문장이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냥 생각나서 꽃 한 송이 사 들고 오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다.
물건에 마음을 담는다는 건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준비된 값비싼 선물보다, 그냥 그 사람이 생각나서 앞뒤 없이 사게 된 선물 말이다. 우리가 꽃을 사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닐까.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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