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부끄럽지 않게 된다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오랜만에 들어갔다. 내 책 제목을 검색해 보았다. 판매지수를 보고는 사이트를 꺼버렸다. 솔직히 나는 내가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더 솔직히는 나에게 글을 쓰는 재능이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첫 책을 출간하고 온갖 기대를 했었다. 책 출간일을 결정하던날 DM으로 연락이 왔다. 내가 브런치에 쓴 글을 보고 연락했다는 한 다큐멘터리의 막내 작가는 티비출연을 제안했다. 여성으로서의 직장생활에 관한 다큐였다. 더 더 솔직히 말하자면 책이 출간되는 시점에 꼭 맞게 들어온 제안이라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그동안 참아왔던 나의 울컥한 순간들이 보답을 받는 것 같아 한꺼번에 몰려온 기회들이 그동안의 울분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상도 받고 책도 출간하고 티비에까지 나온다고 하니 모든게 꿈만 같았다. 내인생에도 드라마 같은 반전은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비행기를 탔더랬다. 티비에 방송이 나가던날 ‘아프리카 돼지열병’ 특집 방송으로 방송시간이 한시간 늦게 편성됐다. 덕분에 그 방송을 봤다는 사람이 몇 없었다. 안봤으면 했던 회사 상무님만 그 방송을 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무님은 그 후 일을 더 많이 주고, 더 지독한 회사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내인생이 이렇지. 공영방송이라고 흑심 품은 년의 말로가 이렇지 뭐” 방송 출연이 확정되던 날 출판사 대표님은 전화로 이런말을 말했었다. “작가님, 이러다 우리 대박나는거 아니예요?” 그땐 정말 그런 기대를 할만도 했다. 하필 책이 출간된 시점에 책에 실린 글을 보고 방송출연을 제안받았고, 책에, 강연에 마치 내가 진짜 인기 작가라도 된 것 같았다. 9회말 만루 홈런의 역전승을 거둔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 눈에 삐까뻔쩍한 그 일들이 있은 후 지인들은 물었다. “책은 잘 팔려?” , “나름 주인공인데 티비 보고 연락 많이 오지?” 책은 잘 안팔리고요, 아무도 연락하지 않던데요. 라는 대답을 할 때마다 씁쓸했다. 나도 좀 잘풀리면 안되나, 나도 좀 잘나가면 안되나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아니니 다를까, 북토크, 강연등 모든 행사에 나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하필 내가 출연하는 방송이 있던날 돼지열병으로 시쳥률이 폭망하고, 하필 내가 북토크를 하던날 주차 시비가 붙어 그렇지 않아도 역대급으로 참여율이 낮았던 행사가 어영부영 마무리됐다. 그 때의 크고 작은 폭망들이 감히 많은 사람들이 내책을 읽을거라, 내가 인기 작가가 될거라 예상했던 나의 오만함을 혹독하게 꾸짖었다.
그래, 지름길로 가면 내가 아니지…
첫 책을 출간한지 4개월이 지나 겨울이 왔다. 나는 생에 없던 지독한 기침 감기에 걸렸다. 기침이 멈출즈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덮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망을 추억할 겨를도 없이 5개월이, 반년이 지나갔다. 다시 회사원이 되기 싫어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나는 책에 필요한 원고를 마치고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나는 나의 가장이라 자신을 먹여살려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생계를 책임지는 회사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말은 처음부터 다시 작가를 꿈꿔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 꿈이라도 생겨 기쁘다고 생각하자, 하고 출간한지 8개월만에 뜬구름에서 내려왔다.
나는 내가 솔직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줄곧 부풀려진 허세에 지배 당해왔던 것 같다. 솔직하다는 말을 악세사리처럼 반짝거리게 이용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며 속으로는 ‘과연 내가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하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용기를 내라고, 분석하지 말고 글을 쓰라고 말하면서 쓰지 못하는 나때문에 괴로웠다. 허세부릴 시간에 차라리 솔직하게 찌질한 오늘을 썼더라면 그토록 밤새 잠못들진 않았겠지.
잠못드는 밤들을 지나 이제는 작가허세를 벗고 회사원이 되었다. 정말 아이러니한건 되고자 하는 것이 될수록 원하는 모습에서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원하는 것이 되고자 노력하는 순간에 최고로 반짝이는 것이 아닐까. 소풍을 기다리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처럼.
무한도전에서 윤태호 작가님을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내노라 하는 피디, 작가, 심리학자, 유명하다는 스님까지 나왔더랬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전문적인 말보다 웹툰작가인 그의 말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꽂혔다. 똑똑하고 대단하다 여겨지는 사람의 말보다도 내가 겪었을법한 일들을 겪어내고 그것을 만화로 풀어낸 윤태호 작가님이 더 대단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위대하다는건 어쩌면 기꺼이 부끄러워지는 것이며 기꺼이 부끄러움을 말할 줄 아는 용기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을 느껴봤던 사람의 말과 글이 나에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어도 나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부끄러움을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마음을 주지 못한다는 것도.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글을 쓰며 솔직해지기가 쉬웠냐고. 쉽지 않다. 욕 먹을 각오를 하고도 욕먹기가 싫어 수시로 제목을 수정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 변하는 마음을 너그러이 용서해야 하고 모든 순간 작가로 살 수 없는 생계형 자신을 토닥여줘야 한다. 그러나 확실한건 오락가락하는 마음조차 글로 쓰는 것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악플을 잊게 만드는 건 “정말 공감되더라. 사이다처럼” 이라는 한마디이다. 그 말 한마디면 나는 부끄러운 것을 더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아무일 없는 일상을 글로 쓸 것이다. 내가 써내는 일상은 나만의 것이므로 눈치 볼 필요가 없다. 회사원으로서는 눈치도 보고 상사의 기분도 살펴야 하지만 내 글 속에서 만큼은 눈치보지 않아도 된다. 글을 쓰면서부터 꿈 속을 덜 헤매인다. 글조차 쓰지 않았던 때에는 꿈속을 사정없이 헤맸다. 건물이 무너지거나, 출근길 살인자에게 쫓기거나 걸어도 걸어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거나 그랬다. 한번은 버스를 탔는데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없었다. 그 버스는 어디로 가는지 물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엄마의 전화에 버스를 내렸다. 그리고 지도를 보며 어딘가로 끝없이 걸어갔다. 엄마는 꿈에서 말했다. “글쎄, 엄마도 길을 잘 모르겠어” 그렇게 정처없이 걷다가 꿈에서 깼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던걸까.
한동안 길찾는 꿈을 꿨다. 그러다가 요즘은 결혼하는 꿈을 자주 꾼다. 내가 내 삶에 어떤 것을 부끄러워 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요즘 결혼하지 못한채 마흔이 되는 것이 싫은가 보다. 부끄러워도 어쩌랴. 제일 부끄러워 하는 것을 하지 못한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 내가 부끄러워 하고 있구나’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더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게 된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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