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당장 즐겁게 하는 것!
어렸을때 사람들이 ‘직업이 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회사원’이라고 대답했다. ‘디자이너’라고 말하는게 어쩐지 부끄러웠다.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없었기에 그대로의 내 미래는 참담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걸까’ 라는 질문이 늘 내 뒤를 따라다녔다. 버텨보기도 하고 도망 가보기도 하고 딴짓도 해보면서 디자이너로 10년이 넘게 일 하고 나서야 디자인 하는 나를 믿어줄 수 있었다. 반면 이제 막 듣게 된 ‘작가’라는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좋다. 글쓰는 일은 나 혼자의 고유한 싸움이라 그런지 힘들고 버거운 날도 많지만 그런 순간에도 글 쓰는 일만큼은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의도와는 달리 여러 관계속에서 내 모습이 우스워지는 순간에도 "이현진 작가님께"라는 제목의 메일 한 통으로 다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나다워지는 것을 잊는 순간에 나를 웃게하는 것, 그게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좋아하는 글쓰기를 한지 몇 년, 요즘은 고민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은데 글의 마무리가 잘 지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책 출간 이후 글에 대한 자신감이 올라가기 보다 오히려 한 풀 꺾인 탓이며, 읽을 사람의 피드백을 자꾸 떠올리는 탓이다. 일단 내가 즐거웠던 글쓰기는 어디로 갔는지, 작가라는 직업의 시작점에서 부터 쉽지가 않다. 잘하고 싶은 마음 없이 그저 내가 즐겁게 글을 쓸 때에는 고민 없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개입한 이후부터는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때마다 머뭇거리게 된다.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다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도 다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또한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에 100%가 되려고 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늘 이게 문제다. ‘잘 하고 싶은 마음.’
나는 뭐 하나를 해도 가볍게 하는 법이 없다. 딱히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시작만 하면 발동이 걸린다. “아니면 말지 뭐!”라고 뭐든 가볍게 대할 순 없는지, 나를 탓하기도 지칠만큼 작은 것 하나에도 사활을 걸곤 한다. 사진 한장을 찍어도 잘찍었단 소리를 듣고 싶고, 설거지를 해도 ‘와 설거지도 잘하네!’라는 소리가 듣고 싶어 기계처럼 움직인다. 그렇다. 슬프게도 ‘열심히병’을 지병으로 가지고 태어났다. 이 병이 있는 사람은 다 잘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보다 딱 두 배 무거운 삶을 산다.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거다. ‘넌 왜 이것 밖에 안되니?’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내자신을 구박하고 못살게 굴었다. 글쓰기도 처음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배제된 영역이었다. 잘하지 않아도 되니 자유롭게 글을 쓰다가 그놈의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끼어든건 첫 책을 출간했을 때부터다. 정확히는 글쓰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부터 글쓰는 동안의 즐거움이 ‘잘 해야 하는’ 마음에 밀려났다.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림 그리는 길로 가지 않은 것은 그것을 지속할만한 재미가 거기에 없어서다. 반면 재능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들을 ‘지속’하면서 살아간다. 글쓰기, 북바인딩, 지우개 도장 만들기, 캘리그라피 등등. 지속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잘하게 되면 "재능 있다" "타고 났다"는 말을 들으며 산다. 재능은 결국 ‘재미’가 아닐까. 고민이나 선택을 앞두고 우리가 가장 촛점을 맞춰야 할 것은 나의 ‘즐거움’이다. 열심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는 즐거움이란 소리다. 물론 재밌어서 시작했지만 재미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 그럴땐 ‘해 봤다’는 경험만 내 인생에 플러스 시키면 된다. 재미를 느끼고, 일단 해보고 내 결이 아니란걸 알게 되면 오케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나를 오케이 하게 만드는건 역시 즐거움이다.
나의 즐거움, 그것만이 전부이다.
나의 즐거움으로 열심히병을 치료하는 중이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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