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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Oct 10. 2017

구겨지지마

보통이라는 무서운 레이스 위에서


긴 명절 연휴가 끝이 났다.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기분 탓에 쉼표가 꼭 필요했었는데, 5일을 먹고 자고 놀았는데도 5일이 남은 휴가는 정말 꿀같이 달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는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징그러운 압박을 하루에 한, 두마리 정도는 달고 다녔지만.


왜 나는 제대로 쉬지 못할까.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 조차 하지 못할까. 맨날 못하는것 타령만 하고 있자니 나는 맨날 못하는 사람 같아서 나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심지어는 별책부록으로 따라오는 ‘TO DO LIST 포스트잍’이 징그럽기 까지 하다. 언제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 했을까. 


서른여섯이, 삼십대가 당연하게 이루고 되었어야 할 한국사회에서의 입지와 위치, 그 무서운 보통의 범주에 들지 못해서일까. 그럼 나는 언제쯤 그 보통의 범주에서 자랑스러운 딸이 될까. 이번 생에서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모두가 먼저랄것 없이 그 '보통'의 레이스에 뛰어들어 내달리니 일단 뒤쳐졌는데, 또 자존심은 있이서 내가 뒤쳐져 보인다는게 너무 억울하다.


첫째라 그런지, 성격이라 그런지 내 마음속에 늘 걸리는게 하나 있다면,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싶다는 것. 아직 한번도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해서인지 아무리 누군가가 칭찬과 인정을 내 손에 쥐어줘도 도무지 만족이 안됐다. 어쩌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자식을 두셔서 남들처럼 자식자랑 한번 해보지 못하고 사시는지 늘 안타까웠다. 그래서 어설프게 보통레이스 언저리에서 따라 달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건 뭐 보통도 아니고 보통이 아닌것도 아닌 쭈구리 같은 내가 저기 서 있는것이 보였다.


아.... 저렇게 구겨진 애가 아니었는데, 그놈의 보통 신경쓰며 어설픈 보통놀이 하다가 많이 구겨졌구나 싶었다. 커피소년 ‘다리미’노래 가사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다 구겨졌어요 다 해어졌어요
원래는 빳빳했는데 다 구겨졌어요
칙칙해졌어요. 빛이 바랬네요
원래는 고왔었는데 많이 상했네요
얘가 이렇게 구겨진 애가 아닌데
삶이란 풍파가 널 구겨지게 했구나

그렇게 내 자신을 저 멀리 세워놓고 찬찬히 살펴보니, 달리기도 못하면서 보통레이스에서 달리느라 맨날 넘어지기만 한 것 치고는 번번히 일어나는게 기특하기도 하고, 남들은 넘어지지 않는 낮은 턱에도 넘어져, "나는 남들의 세배쯤은 더 사는게 힘든것 같다"면서도 웃고 있는게 사랑스럽기 까지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별로 구겨진 티도 안나고 구겨진것 따위는 문제 될 것도 없는게 아닐까.


살다보면 지쳐서 허우적대기만 하다가 구깃, 그런 자신이 싫어서 구깃, 그렇게 불안해서 구깃, 불안한 마음에 내 갈길 아닌 길 가면서 구깃, 그러다 넘어져서 구깃,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워서 구깃, 온통 구겨질일 투성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구겨지는 이유는, 그런 세상살이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들에 쉽게 구겨지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 인것 같았다. 안그래도 남들의 세배는 힘든 하루를 잘 버텨내는 자신을 칭찬해주지는 못할망정, 맨날 마음을 구기기나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고 보니, 그 구김살 마저 사랑스럽다. 위로하고 토닥여 주고 싶었다.


구겨져있는 나를 쫙쫙 펴서 꾹꾹 눌러 적어보자.

“어제 그랬던것 처럼 나를 사랑해 주길, 내 자신을 사랑해 주길”

구겨져도 괜찮아, 조금 찢어져도 가장자리가 많이 낡아도 괜찮아. 그 누구도 너를 찢어버릴순 없어.

구겨져있는 너를 너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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