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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Jan 07. 2024

딴생각 중

무용한 것들의 쓸모


친구가 별로 없던 10대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장 맨 위 칸에 꽂힌 아주 오래된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헌책방에서도 매우 구석진 곳에 위치해 먼지나 뒤집어쓰고 있을 것 같은 책들은 누렇게 변색이 되어있었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운영전’, ‘사씨남정기’ 같은 이해 못 할 제목의 책들이었지만 호기심에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푹 빠져들어 어느새 이십여 권이 넘는 책을 다 읽었다.


처음엔 쓸데없이 길다 생각했던 인물들의 문어체 독백이 점점 고아하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들의 행불행에 따라 내 안에서도 다양한 감정이 피었다 지고를 반복했다. 종국엔 고난을 이겨내고 행복을 쟁취한 주인공들의 삶에 큰 위로를 받았다. 현실의 엔딩은 이야기와 다를지라도 상관없었다. 내 안에 움직이지 않는 어떤 것이 자리 잡았는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상주의자의 유물 같은 것이었다.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비현실적인 신념은 케케묵은 조선시대 소설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여전히 내 안에 생생히 각인되어 있다. 18세기 이후 무명작가의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1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벌써부터) 염세주의자였던 십 대 여자애를 꿈꾸는 자리로 이끌었다.

나와 같은 소년이 여기 한 명 더 있다. 그림책 ‘딴생각 중’의 주인공 소년이 책상에 앉아 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손에 든 책이 아니라 허공을 향해 있다. 소년의 곁을 스치며 날아가는 공중의 하얀 새떼들 사이, 노란 새 한 마리를 꿈꾸듯 바라보고 있다. 그 새는 소년의 눈에만 보인다. 그때부터 소년은 틈만 나면 노란 새가 되어 멋진 여행을 떠난다. 때로 소년은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도 듣지 못할 만큼 멀리 떠나 있었다. 상상 속에서 하늘을 날며 멋진 여행을 하고 있을 소년을 보니 문득 조선시대 기행가사인 ‘관동별곡’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관동별곡의 화자는 아름다운 자연과 신선세계를 동경해 속세를 등지고 싶지만 위정자로서 백성을 잘 다스려야 하는 책임이 있기에 갈등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달이 뜨기를 기다리다 깜박 잠이 든 그의 꿈에 나타난 신선이 ‘너는 본래 신선이었는데 왜 신선을 동경하는가?’ 라며 술을 한 잔 권한다.


달밤 공중에 앉은 두 신선이 북두칠성을 기울여 동해 바다를 술 삼아 한 잔씩 마시는 장면을 상상하면 마치 나도 공중을 날 것도 같은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인다. 신선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 화자는 작별 인사를 한 후 잠에서 깨어나 끝도 없이 펼쳐진 달밤의 바다를 굽어보며 결심한다. 이 맛있는 술을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 후 신선 세계로 향하겠다고 말이다.


꿈 속 신비로운 경험은 화자가 위정자로서의 현실을 성실히 살아낼 원동력이 되었다. 소년의 딴생각은 관동별곡의 화자가 꿈꾸던 신선처럼 누군가의 눈엔 헛된 망상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상상력이 어떤 놀라운 것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무한한 상상력이 우리의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어 나갈지 또한 알 수 없다.


어떤 이에게 딴생각은 생산적이지 않아 쓸모없는 행위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장자』에 나오는 ‘쓸모없는 나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무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설파한다. 한 목수가 어마어마하게 키가 큰 나무를 발견하지만 옹이가 많아 목재로는 가치가 없다며 그냥 지나친다. 그날 밤 목수의 꿈에 나타난 나무는 목수가 쓸모없다고 말한 옹이 덕에 이만큼이나 크게 자랄 수 있었으니 옹이는 자신에게 쓸모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생산적인 생각과 활동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나무는 그 자체로 동물의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고, 아름드리 자라난 나무가 드리운 그늘은 휴식처가 된다. 누군가가 그 나무뿌리를 베고 누워 꿈을 꾼다면 관동별곡의 화자처럼 신선이 되어 하늘을 날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우리는 개별적인 조각으로 존재하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고 그 이야기들은 서로를 불러들이며 관계를 맺는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인간은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듯 존재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상상하는 존재로부터 가능성은 열리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기어이 현실을 살아낼 힘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변화시킨다.


어느새 어른이 된 나는 지금도 일보다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 안에서 유영하는 사이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인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경험을 한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신비다. 나는 이제 안다. 딴생각에 빠져 누구보다 멀리 떠나갔던 사람들이 우리의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갈망하는 아름다운 상상들은 찬란하게 피어나이 세상에 더 단단히 뿌리내릴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딴생각’을 쓸모없다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는 소년의 노란 새를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딴생각하는 소년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 만큼 ‘딴생각 중’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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