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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의 서 May 08. 2022

광야의 잔치

누가복음 17:10

예수와 요한은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요한은 율법의 시대 끝에, 예수는 복음의 시대 출발선에 섰다. 요한은 절제하였고 금식하였고 광야의 소리로 살았다. 예수는 가는 곳마다 잔치를 베풀었고 풍성히 먹였고 도시와 마을로 찾아다녔다.

예수도 요한도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선 일치했다. 그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다. 율법의 시대를 마무리하던 요한에게 하나님 나라는 평생을 기다리던 복음이었을 테다. 예수는 그 복음의 시작이었고 요한이 비추는 조명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그리고 그 순간 스스로의 말처럼 요한은 쇠하였고 ‘그분’은 흥하였다.

요한이 가리켜 보였던 복음이 그 자신에게도 복음이었을까.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당혹스럽게도 사적 원한이 가져온 투옥과 죽음이 그가 기다리던 나라의 끝이었다. 적어도 기록된 요한의 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어쩌면 그가 기대한 것과는 다른 결말에, 그마저도 결코 명예롭지 못한 죽음이기에, 모두가 요한의 질문을 되뇐다. 광야의 소리는 요란한 왕궁의 잔치로 막을 내리고, 잔치의 주인공도 그 희생자도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청자도 이 불가해한 결말에 불편해진다.


요한이 다다른 하나님 나라에는 두 렙돈으로 그 나라를 가진 과부와 거지 나사로들이 있다. 그들 사이를 지나던 요한에게 예수의 음성이 들린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단다.”

요한이 조용히 답한다.

“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부활의 아침은 기이하리만큼 조용하고 평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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