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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의 서 Nov 22. 2022

믿는다는 것

is being sure, is being certain

내가 바라는 것들이 있다. 평안의 삶을 바란다. 그리고  평안을 가져다  관계를 바란다. 하루에도   번씩 불편하고 짜증 나는 상황과 감정을 마주할  내게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해  적은 없다. 믿음의 정의를 떠올려 보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히브리서 11.1


언제나 그렇듯 정의된 문장은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실상 “증거라는 단어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으니 여러 번역을 맞춰 본다. 의외로 <믿음장>이라는 별칭을 지닌  편지의  문장은 단단하고 분명한 구조로 믿음을 정의 내리고 있지 않다. 오히려  믿음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독자의 호흡을 고르게끔 가볍고 이해하기 쉬운 형용사적 술어로 이루어져 있다.


Faith is being sure of…

Faith is being certain of…


믿음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과 요셉과 모세 그리고 하나하나 늘어놓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믿음의 이야기들이 아벨에서 나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도 바라는 것이 있었다. 살아서 소망하는 바를 이룬 자도 있고 그전에 죽음을 맞은 이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그들 모두가 믿음으로 살았고 여전히 그 믿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긴 믿음의 여정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 그것은 하나님 자신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평안도 그분 안에서만 참되다 하신다. 전쟁터 같은 일상에서 잠시 물러나 지내는 한적한 시골에서도 평안하기가 쉽지 않다.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잔상이 여전히 평안의 신으로 갈아 신으려는 내 발목을 유령처럼 붙잡기 때문이다. 때로는 평안을 찾아 도피한 그 공간이 불편하고 적대적인 사람과 상황을 '심층적으로' 묵상하는데 기여한다.  


이것은 내가 너희에게 주는 내 평안이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다. 요한복음 14.27


그러니 평안의 주님과 <함께>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내 의지와 힘으로 평안의 조건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직 믿음이 그 미문 앞 걸인에게, 열두 해를 앓던 한 가련한 여인에게, 이미 죽은 열두 살 어린 딸의 부활을 구하던 야이로에게 참된 평안을 주었다. 믿는다는 것, 그것은 나의 길 끝에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뵙는 것이요, 그 길을 가는 동안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배우고 함께 하는 것임을 짧고 평범한 두 줄의 정의 속에서 깨닫는다.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Faith is being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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