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도 식후경
낮에 차려 준 국수재료가 많이 남았다며 저녁은 쑥갓 가득 넣어 된장찌개를 끓인다. 남편의 밥상을 그저 받아먹기만 하려니 좀 미안하다. 자신도 일 년에 한두 번 쉬는 명절인데, 아내를 위한 봉사가 너무 과하다 싶다. 나도 한 끼는 거들어야겠다 싶어 명절 전 재워 둔 LA갈비를 꺼낸다. 며칠 숙성시킨 고기 굽는 향이 된장의 구수함과 섞여 입맛을 돋운다.
일 년에 두 번, 십 년 넘게 명절용 고기를 주문해 배송까지 맡아 주시는 사장님이 계신다. 예전에 수입고기를 유통, 관리하며 대규모 사업체를 운영하셨는데, 광우병 소동으로 정성으로 일구던 회사를 매각하셔야 했다. 직원 승계를 보장하는 대신 그가 가진 특허 및 사업권을 모두 넘겨야 했고,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가족에게 혹 상처가 남을까 염려하여 아내와 세 아이를 뉴질랜드로 보냈다. 그리고 홀로 남아 그 큰 일들을 감당하고 처리하고 해결하였다. 사장님 부부의 드라마 같은 인생 이야기를 들을 때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들의 우선순위에 감동하게 된다. 남편은 흔히 그 연배 남자들이 도취되어 떠벌리는 영웅 서사와는 거리가 먼 선택을 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부부가 참 많이 닮았다.
부부의 식탁에 초대받을 때면 늘 푸짐하게 고기 요리를 맛본다. 사장님은 고기의 종류, 상태, 질감 그리고 양념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으며 가장 먹기 좋은 육질로 구워낸다. 어느 요릿집에서도 사장님의 손 맛만큼 적절하게 간이 배고 씹기 좋게 익힌 고기를 먹어보지 못했다. 마치 이름이 다른 <식객>의 화자가 현신하여 우리의 귀와 눈과 혀를 사로잡는 것만 같다. 남편이 호탕한 웃음과 해설로 고기를 굽는 동안, 아내는 틈틈이 담아둔 밑반찬을 정갈하게도 담아온다. 하얀 사과꽃처럼 향기로운 미소를 머금고 분주히 식탁을 차리는 열기에 달아오른 두 볼이 과수원집 셋째 딸의 면모를 과시하는 듯하다. 웃음 많은 부부의 묵직한 나무 식탁 위에는 3구짜리 보름달이 떴다. 부부의 사랑과 배려와 헌신 그리고 또래에게서 보기 힘든 세 아이의 미소와 예의에 대한 나의 찬사를 담아 식탁등을 선물했고, 그 아래 가까운 이웃들이 모여 이따금 만찬을 즐겼다.
올 명절에도 어김없이 고기를 전해 주러 오신 사장님의 흰 머리칼이 늘었다. 배드민턴으로 꾸준히 단련해 오던 몸에 이상 신호가 생겨 스탠스 시술을 받은 후로 그의 웃음과 음성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예전과 같은 장시간 모임이 힘들어졌고, 하루 이틀 숙성시켜 맛을 내고 여러 장비에 불을 지펴 고기를 굽는 식탁 준비도 부담스럽다. 이제는 집 밖 식탁에서 오랜 이웃들의 사정을 듣고 함께 한숨짓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림이 더 익숙하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식탁의 채도도 변하는 듯하다. 수다와 활기와 웃음 가득했던 천연색 식탁도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의 시간에 맞춰 고색창연해진다. 언젠가 사장님 댁 식탁등도 갈아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