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의 다정마을

오고파 전

by 미정의 서

남은 재료들을 살펴보던 남편이 점심엔 간단하게 전을 부치겠다길래 "이미 올라온 메뉴입니다"며 밉살스럽게 웃어 보였다. 내가 덮어쓸 기름은 아니니 새로운 창작물 기대한다며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돌려대는 동안 어느새 오징어, 고추, 파로 구성된 전 한 장을 간장과 함께 별도의 상에 차려 낸다. 재료 구성만으로도 최고의 조합이니 맛이 없을 리 없다. 닷새간의 요리에 매진한 남편은 기본 장류, 양념의 중요성에 눈을 떴는지, 오전 내내 간장 감별에 시간을 보냈다. 찬장 한편에 잘 모아둔 유리 종지들을 있는 대로 꺼내 장마다 조금씩 덜어 염도 등을 체크하더니 이 장은 국요리, 다른 장은 조림 등에 쓰는 것이 좋겠다며 요리 전문가처럼 분류한다. 미각 테스트 끝에 양념장도 나름 배합하여 맛보라 권하니, 나는 또 미슐랭 평가사인 듯 최고의 맛점수를 달아주었다.

두 식구에 책 말고는 별다른 짐도 없는 우리는 결혼 후 늘 2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다녔다. 그런 우리에게 나중에라도 집을 마련하면 그때 그 집이면 좋겠다는 기억의 집이 있다. 그곳은 34평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여러 사정으로 1년 2개월 정도 지낸 집이었는데, 집관리도 제대로 안되어 둘이서 벽지며 설비들을 직접 고쳐가며 살았던 곳이다. 체온을 앗아가는 추위에 난방비도 이전 집보다 배로 냈던 그곳을 추억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남편의 요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늘 이웃의 초대만 받고 살던 우리도 공간이 넓어지자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초대해 밥을 짓는 즐거움을 알아갔다. 가족, 친구, 이웃, 점점 초청의 범위를 확장해 가는 동안 상차림에도 요령이 생겼다. 3인식탁에서 최대 8인식탁까지, 품목도 집밥에서 삼계탕, 대하구이 등으로 다변화되었고 그에 따른 조리도구들도 늘어갔다. 손꼽아보니 일주일에 한 번은 손님상을 차렸던 것 같다. 그래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았고, 소소한 일상에서 거창한 시국담화까지 무엇이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때의 경험으로 식탁의 온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 함께 둘러앉은 사람에 따라 소화 잘되고 따뜻한 식탁이 있다. 좁은 15평 아파트서 처음 시댁 식구들에게 차려낸 집들이상은 비방과 트집의 언어로 차가웠다. 이후 시댁 모임은 외식이 원칙이 되었다. 어쩌다 집에서 모여야 할 때면 마음의 문을 단단히 잠가둬야 했다. 방심하는 사이 얼음 화살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운 정을 다년간 겪다 보니 짧은 시간 경험한 따뜻한 정이 내게는 선물 같았다. 낡은 집의 물리적 온도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른 정이 모이니 두 배의 공간을 채우고도 남는 온기가 식탁을 에워싼다. 그러니 부부의 시간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안겨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인 셈이다.

남편의 성씨는 ‘정’씨다. 신혼 때 아이를 가지면 이름을 ‘다정’이라 부르기로 했다.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정이 많은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아이가 없으니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마을을 만들고 싶다. 매일 따뜻한 식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장소를 생각해 본다. 미운 ‘정’도 있지만 내 주위엔 다정다감한 ‘정’이 더 많다. 내게 소중한 친구도, 남편에게 신실한 친구도 ‘정’이다. 우리 부부에게 늘 고마운 이웃도 ‘정’이다. 누구보다 남편이면서 내편인 그가 ‘정’이다. 그래서 내 마을의 이름은 ‘다정마을’이다. 남편의 요리에 우리의 이야기보다 이웃과의 추억을 떠올린 것도 그런 소망이 담겨서가 아닐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미정의 다정을 위한 예비적 식단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재료며 과정도 꼼꼼하게 기록해 둬야겠다 싶어 메모지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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