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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자의 특권 #평일여행

회사만 그만두었는데, 좋은 점이 이렇게 많다니.

by 백수쟁이

부모님이 부산에 가신다기에 나도 따라나섰다. 우린 서로 다른 지역에 살아서, 부산에서 만나기로 했다. 부산은 내가 십 대까지 살았던 곳. 모처럼 친구들도 보고 싶어, 주말에 먼저 내려가려 했다. 교통편과 숙소를 알아봤는데, 기차표는 다 매진이었고 숙소는 비쌌다. 이래서 주말여행은 어렵다. 하는 수 없이 부모님 일정에 맞추어 월요일에 출발했다.


일정을 월요일로 옮기고서야 이게 퇴사자의 특권이구나 싶더라. 나는 회사 다닐 때도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평일엔 회사에 매인 몸이라 보통 주말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휴가를 쓸 때도 있었다. 보통 주말에 닿아있는 금요일 혹은 월요일에 썼다. 금요일보다는 월요일 휴가를 좋아하는데, 언젠가부터 업무가 많은 월요일에 휴가를 쓰는 게 부담이 되어서 되도록 금요일에 휴가를 썼다. 휴가를 쓸 때 회사 눈치는 안 봤으나 내 주머니 사정은 계속 신경 쓰이더라. 주말여행엔 비싼 값을 치러야 하니까. 인기 많은 여행지의 숙소는 퀄리티에 비해 너무 비쌌다. 교통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말 기차표는 구하기 힘들고, 차를 끌고 가면 고속도로에 갇혀 기름만 질질 버리는 기분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비싸게 치르는 기분이었다. 다들 주말에 나를 따라 나온 건지, 내가 가는 곳마다 대기를 해야 해서 이번엔 길바닥에서 내 시간을 질질 버리게 되더라고. 또 주말여행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친정 부모님과 여행하는 것. 부모님은 주말에 시간을 낼 수가 없어 함께 여행한 지도 오래되었다.


회사만 그만두었을 뿐인데, 좋은 점이 이렇게나 많다니. 요즘 매일 같이 하는 생각이다. 여행 일정을 옮기고서도 다시 한번 생각했다. 퇴사하니까 평일에 여행도 할 수 있구나! 기차표도 한 번에 수월하게 예매했고 내 일정에 맞추어 변경하는 것도 쉬웠다. 부모님과 지낼 숙소를 바닷가 바로 앞에 잡았는데, 웬걸 너무 싸서 0 하나가 빠진 건 아닌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무엇보다 부모님과 모처럼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참 감사하다. 내가 퇴사자여서! 시간 많은 백수여서! 평일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회사원들이 점심을 먹는 시간, 나는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책을 읽다가 깜빡 졸고, 잡생각을 끄적이다가, 유튜브를 보다 보니 어느새 부산. 밀면 한 그릇 먹고, 숙소에 짐을 풀고 커피숍에 와서 이 글을 쓴다. 평일에 떠나는 기차 여행에, 저렴한 숙소, 부모님과의 시간까지. 하나하나가 다 호화롭게 느껴진다. 그래, 정말 이건 퇴사자의 특권 같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 특권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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