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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 모르는 나의 퇴사

엄마는 ‘회사 밖에서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는 나‘를 걱정하니까.

by 백수쟁이

가까운 친구와 친동생에게 퇴사 소식을 전했다. 시부모님께도 남편이 자연스럽게 잘 이야기해 주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한동안 푹 쉬라는 격려와 응원을 듬뿍 받았다. 헌데 퇴사 소식을 전하지 못한 상대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부모님이다.


작년부터 퇴사를 고민했고, 회사에 퇴사 얘기를 한 적도 있다. 그즈음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며 넌지시 퇴사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경기가 어려워 나가면 답도 없다더라, 회사를 다니는 게 그나마 나은 거다, 모든 회사 생활이 그렇다는 등의 말을 했다. 나의 힘듦을 너무나도 몰라주는 게 서러워 벌컥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이 기억 때문인지 엄마에게 퇴사 소식을 전하기가 어렵더라.

엄마는 내가 회사를 그만 두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아는 사람. ‘회사 속에서 힘든 나‘보다, ‘회사 밖에서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니까. 엄마를 속이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퇴사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부산에서 만난 엄마에게 휴가를 썼다고 거짓말했다. 퇴사의 ‘퇴‘자도 꺼내지 말자고 속으로 몇 번 다짐했는데, 해변 산책 중에 뜬금없이


“너 퇴사했니?”


희한하다. 엄마의 촉이 이렇게나 무섭다. 걱정과 잔소리를 피하고 싶었다. 아니라고 고민 중이라고만 짧게 말했다. 요즘 회사 상황은 어떤지, 뭐가 힘든지 등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여러 질문을 던졌다. 급여일이 밀리고 회사가 어려워 이사를 가야 한다고 퇴사 직전 알게 된 회사 상황과 그래서 매일 지표 보고를 해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건조하게 말했다.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노이즈 캔슬링이 된 것처럼 파도 소리와 내 심장 소리만 들렸다. 엄마는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그만두고 엄마 집에 내려오라고 했다. 엄마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줄 터이니 좀 쉬라고.


코 끝이 찡했다. 퇴사 얘기를 하고 들은 어떤 말보다 따숩고 든든했다. 엄마가 회사 속에서 힘든 나를 꺼내, 엄마의 품으로 감싸 안으려 하는 것 같아서. 엄마의 말 한마디에 견고한 지지대를 얻은 듯했다. 이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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