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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도서관에서 읽은 것.

그제야 내가 원하는 삶의 태도가 어렴풋 감각되었다

by 백수쟁이

도서관에 처음 드나든 건 중학생 때.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길을 한참 올라야 닿을 수 있는 도서관이었다. 그땐 시험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갔다. 당연히 공부만 한 건 아니다. 책가방만 던져 놓고 나가 놀거나, 비치된 유행통신과 키키 같은 잡지를 뒤적이거나, 엎드려 잠만 자다 오기도 여러 날. 도서관이 참 좋았다. 공부하란 잔소리를 들은 적이 거의 없는데도 스스로 도서관에 갔다. 시험 압박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도서관에 가는 나 스스로를 대견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는 학교 안에 큰 도서관이 있었다. 이때는 공부가 아닌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에쿠니 가오리나 츠지 히토나리 등 일본 작가의 소설을 좋아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보다는 대여하는 게 좋았다. 한 번에 다섯 권 정도 빌릴 수 있었다. 다 읽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꼭 다섯 권을 채웠다. 이번엔 다 읽겠다는 의지이기도 했고, 책을 가득 빌려오면 마치 지갑에 돈이 두둑이 있는 것처럼 든든했거든.


회사에 다니면서 도서관에 발길이 뜸해졌다. 책상에 앉아 시험 공부할 일도 없고, 회사에서 책을 사주기도 했고, 빌려 읽으면 되니까 좀처럼 갈 일이 없더라. 예전 회사 앞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 데도 5년 동안 10번도 채 안 갔다.


퇴사하면 뭐 하지. 당장 배우거나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는 상태. 관심이나 흥미가 생기는 것도 없고. 가만히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왠지 시간이 아깝고 아쉽다. 루틴처럼 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했다. 이 생각 끝에 떠오른 건 도서관이었다.


오늘의 투두 리스트에 ’ 도서관 가기’를 쓴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삼십 분 남짓 걸어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더라. 한창 더운 시각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걸어서인지 금세 땀이 났다. 차를 타고는 여러 번 지나갔지만 걸어서는 처음이라 주변을 구경하며 걸었다. 같은 풍경도 차 안에서 보는 것과 걸으며 보는 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일 년이 다 되었는데 동네 산책 한 번 안 했다는 사실도. 이 동네와 집을 주차장과 침실정도로 여기며 지냈던 것 같다.


드디어 도착한 도서관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정기 간행물실. 신문을 읽고 싶었다. 고작 신문을 읽자고 도서관에 갔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고작 신문이 읽고 싶었다. 핸드폰만 있으면 실시간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뉴스를 볼 수 있지만, 무한대로 쏟아지는 기사에 허우적대고 실시간 뉴스에 일상의 집중력을 빼앗기는 대신, 신문지의 기름 냄새로 호흡을 고르고 한 장씩 신문을 넘기는 촉각과 함께 기사를 천천히 읽어내고 싶었다. 보도 내용보다 댓글 반응에 더 눈이 가는 온라인 뉴스 대신 신문을 읽으며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싶었다.


한 시간 남짓 신문만 읽은 뒤, 이번엔 책을 보러 갔다. 빽빽하게 놓은 책장들이 숲 속처럼 평안했다. 에세이 코너로 갔다. 찾는 책이 있는 건 아니어서 책등의 제목을 천천히 읽다가 마음에 드는 책은 꺼내어 펼쳐 보기를 조용히 반복했다. 책 한 권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묵직한 갈색의 큰 테이블에 모여 앉은 사람들.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는 모습들 사이에 내가 있는 게 좋았다.


도서관을 나서며 그제야 내가 원하는 삶의 태도가 어렴풋 감각되었다. 핸드폰으로 세상을 빠르게 훑는 대신, 내 속도로 한 장씩 넘기며 세상을 들여다보는 태도. 익명의 댓글보다는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하는 태도. 여러 가지 일에 멀티 태스킹하는 대신 고요히 중심을 잡으며 집중하는 태도.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이 그랬다. 속도도 남의 생각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호흡으로 시간을 보내며 나도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필요했고, 이런 삶을 살고 싶다. 도서관에서 내가 읽은 건 신문과 책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읽고,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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