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건네듯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엄마는 진짜 쇼핑을 좋아한다. 어릴 적 엄마 따라 여성복 매장을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모른다. 다행히 흥청망청 돈을 쓰는 스타일은 아니다. 필요한 것만 사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금세 정신(?)이 돌아와 환불을 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엄마는 더 이상 쇼핑이 재미없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 말을 안 믿었지만. 섬으로 이사 간 엄마는 이제 육지에 올 때마다 쇼핑을 한다. 가끔은 쇼핑을 하러 육지에 오는 것 같기도. 엄마 말로는 섬에는 쇼핑할 데가 없어서, 이럴 때나 스트레스 풀 겸 아이쇼핑을 하는 거란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쇼핑을 한다는 게. 어릴 적 엄마를 따라다닌 게 질린 건지 나는 쇼핑을 안 좋아한다. 필요한 것도 없는데 구경만 하는 건 더 별로다. 엄마는 마트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만, 나는 아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쇼핑하기 전에 다시 한번 고민하고,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은 남편에게 사달라고 요청한다.(남편도 쇼핑을 좋아한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그래서 내가 무얼 사달라고 요청하면 아주 열심히 검색해서 주문해 준다.)
부산에서 만난 엄마는 역시나 쇼핑을 하고 싶어 했다. 내가 심드렁해하자 백화점에서 지인과 약속이 있다며 나갔다. 지인과 헤어질 때쯤 엄마가 백화점으로 나를 호출했다. 엄마는 자꾸 내게 옷과 가방을 사주려 했다. 마침 나에게 어울리는 가방을 봤다고, 내 스타일의 옷이 있다며 나에게 선물하고 싶단다. 계속 거절하니 엄마는 금세 울적해했다. 자식에게 선물을 하는 것도 부모의 낙이라나.
후, 그 말에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그치만 옷과 가방은 정말 필요가 없는 걸. 대신 책을 선물해 달라고 했다. 마침 서점이 있었다. 서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는 동안 엄마는 서점 한 켠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마치 어릴 적에 엄마를 따라다니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매장을 샅샅이 뒤지며 구경을 하는데, 나는 지쳐서 구석 어딘가에서 서성 거리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골라낸 두 권의 책을 엄마가 기꺼이 계산을 하고는 내게 건네주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에 책 한 권을 챙겼다. 카페에서 엄마에게 책 한 권과 펜을 내밀었다. 책에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펜을 잡으며 “글씨를 쓴 지 너무 오래돼서 자신 없어” 하더니, 금세 글을 써 내려갔다. 엄마의 모습이 귀여워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 연애편지 건네듯 부끄러워하며 책을 내게 다시 건넨 엄마가 말했다.
“이제 책 살 일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 그러면 엄마가 책 사서 계속 이렇게 편지 써서 너에게 줄게.”
그제야 알았다. 엄마는 쇼핑만 좋아한 게 아니란 걸. 엄마는 글쓰기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 몰래 훔쳐보던 엄마의 일기장. 자취할 때 엄마와 주고받던 편지.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앞으로 엄마가 글을 쓰게 하려면, 자주 책을 사달라고 해야겠다. 사실, 책 사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