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많은 걸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퇴사 후 처음이었다. 처음인 건 또 있었다. 성수동에서 만났다는 것. 회사 다닐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가 여의도였던 나의 약속 장소는 대체로 여의도였다. 차를 끌고 다녀서 퇴근길 정체나 주차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건 너무 고되더라. 고맙게도 다들 배려를 해주어 여의도에서 만나곤 했다.
언젠가부터 평일 저녁 약속은 피하게 되더라. 그게 누구든. 여행 후 남아있는 여독처럼 퇴근 후에는 회사 독이 남아있는 건지 너무 고단했다. 함께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자꾸만 집으로 달아났다. 얼른 몸을 누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때때로 예민해져 상대가 어렵게 털어놓은 고민에 ‘고작 그런 게 고민이라고?‘ 못난 냉소를 감추느라 애써야 했다. 나에 대한 다정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도 귀찮아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리곤 했다. 회사 다니며 매일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사회성을 잃어버린 것 같아 나 자신이 걱정되기도 했다.
이번엔 달랐다. 낯선 지역에서 만나니까 더 설렜다. 나누는 얘기마다 집중이 잘 되었다. 어떤 얘기에 신났다가 또 분노하기를 롤러코스터 타듯 반복했다. 툭툭 던지는 말에 웃다가 들린 내 웃음소리가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이렇게 빵 터져 웃는 게 얼마만인가. 평소 사진을 잘 안 찍는 편인데 핸드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날을 오래 추억하고 싶어서.
한동안 느끼지 못한 기분이었다. 왜일까.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걸까. 답은 퇴사에 있었다.
퇴사 소식을 동료들에게 알리면 종종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간다거나 막차 타고 나간다며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퇴사할 즈음 회사 상황이 심각하게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걸 타개한다고 일은 쏟아져 불안과 불만을 한가득 안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고 막차였다. 당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단식과 폭식을 반복했다. 머릿속은 어둡고 눅눅했다.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잠을 먼저 청했다. 하루를 끊어내듯 잠으로 도망쳤다. 어쩌다 시간이 생기면 술을 들이부으며 시간을 삭제했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대신 핸드폰 액정 안의 세상에 빠져 지냈다. 그러니 주변의 관심과 사랑, 함께하는 시간이 피로할 수밖에. 이 상태라면 일‘만’하고 내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 막차 타고 퇴사하는 것이었다.
퇴사하면 많은 걸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잃으니 당연히 월급도 잃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래도 잃고. 막막하고 불안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얻은 게 더 많다. 자연스럽게 새벽 기상을 얻었고, 다시는 쓰지 못할 것 같았던 브런치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금요일 친구들과 찍은 네 컷 사진을 꺼내 다이어리에 붙였다. 이제는 친구들을 만나는 게 즐겁다. 벌써 사라진 감각이지만, 친구들을 통해 회사 생활 얘기를 듣는 게 재미있다. 털어놓는 고민에 내 일처럼 생각하고 시시콜콜한 농담에 목청껏 웃는 이 감각은 다시 돌아왔다.
이제야 알겠다. 퇴사하고 우정도 다시 얻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