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기며 살아온 습관은 퇴사와 함께 끝날 줄 알았는데.
슬며시 눈을 떴다. 방 안의 햇빛이 어제와 다르다는 걸 단박에 알았다. 늦잠이다. 시계를 확인했더니 7시 40분.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다. 퇴사 후 알람 없이도 6시 반 전에는 눈이 떠졌는데, 8시가 다 돼서야 겨우 일어나다니.
화장실로 곧장 달려가 씻었다. 남편을 깨우고 도시락을 챙겼다. 남편을 회사에 데려다주었다. 드라이브 겸 데이트 겸 웬만하면 그를 데려다준다. 차 안에서 그가 물었다. 아침에 왜 그렇게 짜증이 났냐고. 집이 너무 어수선하다고 말한 게 생각났다. 내 말에 그는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집 안의 물건을 이리저리 치워댔다. 불똥이 엄한 데 튀었다. 늦잠 때문에 모닝 페이지도 못하고 스트레칭도 못해 아침이 이래저래 엉켜버린 것 같아 그랬다며 사과했다. 어제 저녁에 외출했었잖아 피곤하면 그럴 수 있지, 괜찮다며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나를 다독였다.
도대체 왜 못 일어난 건지, 앞으로 계속 이러면 어쩌지. 오전 내내 이 생각만 했다.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서도 이 생각을 하다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모닝 페이지가 아닌데, 스트레칭이 아닌데. 하루 늦잠 잤다고 나를 질책하고, 짜증 내고, 걱정 하는 게 아닌데. 여유롭게 아침을 보내는 것, 주도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는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요즘 시간에 강박이 다시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싶었다. 아침 산책을 하고 싶어서. 자는 시각은 조금씩 늦춰지고 있는데, 잠들 때 아이패드를 끼고 있으면서 일찍 일어나길 바랐다. 오후 시간을 좀 더 잘 써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오전에는 바짝 무언가를 하는데, 오후만 되면 늘어지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것 같아서. 회사에서 일하던 습관처럼 종종 시간을 체크했고, 퇴근을 앞둔 것처럼 마무리 못한 일에 혼자 속을 졸였다. 시간에 쫓기며 살아온 습관은 퇴사와 함께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나.
이 시간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도 퇴사하면서 사라졌으니까. 돈 벌기를 포기하면서 얻은 시간이니까.
퇴사 한 지 겨우 3주. 아직 한 달도 안 되었다. 그런데 뭐가 그리 급한가. 정작 잘하고 있는 건 보지 못하고, 못한 것만 집요하게 뚫어져라 쳐다보느냐 말이다.
분명 잘하고 있는 게 더 많다.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고, 한동안 손이 가지 않던 책도 꾸준히 읽고, 외식 대신 집에서 식사를 챙기려 노력한다. 예전엔 ‘해야지 ‘만 수없이 되뇌이던 것들이다. 퇴사하고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데, 기어이 스스로에게 불만을 품고 못마땅하게 여기다니. 어쩌면 회사에서의 습관처럼 나 자신을 성과로 관리하고 있는 걸까.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썼는지,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는지 체크하고 채근하는 건가.
시간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조급하게 몰아세우지 말자.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자. 늦잠이 뭐 그리 대수라고. 7시 40분에 일어난 게 뭐 어때서. 솔직히 말해서 백수가 이 시간에 일어난 것도 일찍 일어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