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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회사 대신 빨래방에 갔다

퇴사를 하니 주말의 일을 평일에 할 수 있어 좋다.

by 백수쟁이

투닥 투다닥-


빗소리에 깬 아침, 잠자리를 정리했다. 커튼을 걷었다. 커튼을 여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커튼을 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만의 소소한 의식이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과 빗소리가 나의 감각을 깨운다. 이런 날은 음악을 켜지 않는다. 빗소리가 훌륭한 배경 음악이 되어주니까. 맑은 날에도 종종 빗소리 영상을 켜두고 생활할 정도로 빗소리를 좋아한다.


비 때문에 조금은 어두운 금요일 아침, 주방으로 가 차 한 잔을 내렸다. 그라데이션으로 번지는 차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제는 아침도 이젠 더워서 따뜻한 차를 더 이상 못 마시겠다고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다르다. 빗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니 몸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잠깐 멍 때리다가 모닝 페이지를 쓰고 남편을 깨웠다. 혼자 보내는 아침에서 함께 시작하는 아침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비 오니까 오늘은 회사 안 데려다줘도 돼. ”

남편의 말에 비가 올수록 차를 타고 회사에 가야 한다고 우겼다. 비 오는 날은 출근하기도 괜히 싫으니까 더더욱 쾌적한 상태로 회사에 가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내가 회사 다닐 때도 그랬다.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면 차를 끌고 회사에 갔다. 조금 더 조심하고,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서면 되니까.


남편을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 빨래방에 왔다. 겨울 이불을 빨기 위해서. 여태 겨울 이불을 덮고 잤는데, 이제는 겨울 이불을 정리해야겠더라. 빨래방에는 나 혼자, 빨래를 기다리며 글을 썼다.


얼마 전, 퇴사 후 보내는 아침 시간이 고요한 사치라고 글을 썼는데 이 또한 사치구나 싶다. 비 내리는 평일을 찝찝함 없이 쾌적하게 즐기고 있다. 주말이면 빨래방에 사람이 많고, 게다가 비까지 오면 빨래방 가는 게 고역이었는데 오늘은 내가 전세내고 카페처럼 이용한다. 세탁기 돌아가는 백색 소음마저 평화롭다.


퇴사를 하니 주말의 일을 평일에 할 수 있어 좋다. 빨래방도 그렇고, 며칠 전 다녀온 병원도 그랬다. 회사 다닐 땐 병원을 고를 수 없었다. 회사 근처에서 빠르게 진료 볼 수 있는 곳에 갔고, 만족스럽지 않았다. 동네에 있는 병원에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주말 오전에 가야 했고, 이제는 느긋하게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어 좋더라.


퇴사하고 좋은 점만 계속 생겨서 나중에 일하기 싫어지면 어쩌지 싶다. 어쩌긴 뭘 어째,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지금의 좋은 점을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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