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을 돌보는 게 나를 돌보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남의 집만 다녀오면 우리 집은 지저분해 보이는지. 얼마 전에도 그랬다. 친구 집에서 놀다가 집에 오니 우리 집이 너무 지저분하더라고. 대청소를 해야겠더라. 약속 없는 어느 평일, 하루 종일 집 청소를 했다. 이렇게 각 잡고 집 전체를 청소하는 건 이사 후 처음, 그러니까 거의 일 년만이었다.
주방 청소부터 시작했다. 온 수납장을 뒤져 필요 없는 것들을 버렸다. 분명 일회용품을 안 들이려고 노력하는데, 왜 수납장마다 일회용품이 하나씩은 나오는 건지 희한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이 쟁여둔 조미료와 레토르트 식품의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맛도 못 봤는데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들이 많았다. 이런 것들을 다 버리고, 물건을 하나씩 가지런히 다시 담았다.
옷방 정리도 했다. 옷방엔 옷뿐만 아니라 별 생활용품들이 다 있다. 선물 받은 것부터 용도를 잊은 여러 부자재까지.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류해 정리했다. 침실도 서재도 이런 식으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까지. 여긴 그래도 매주 청소를 하는데 볼 때마다 더러운 이유가 뭘까. 세제를 뿌리고 때를 불린 뒤 변기와 세면대, 욕조를 박박 문질렀다.
집에만 있었는데 땀이 미친 듯이 났다. 오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웬걸.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 시가 넘었더라. 하루 종일 청소만 했다는 게 놀랍다. 더 놀라운 건 그런 것 치고는 티가 별로 안 난다는 거다. 퇴근한 남편도 잘 모르더라. ‘화장실 청소 했구나. 수고했어.‘ 라고, 화장실 청소만 눈치챘다.
청소라는 게, 집안일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걸까. 밥 먹을 때 빼고는 앉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청소했는데 이렇게나 티가 안 날 수 있냐 말이다. 근데 또 웃긴 게 청소한 건 티가 안 나도, 청소를 안 하면 티가 그렇게도 잘 난단 말이지.
여태 티 나는 회사 일만 하며 살아서 이 결과가 낯설었다. 회사 일은 뭘 해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으니까.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말이다. 결과가 좋아 서비스 지표에 드러날 때도 있고, 나쁘더라도 뭐 고민하며 만든 문서 쪼가리 하나라도 남는다.
그런데 이놈의 집안일은 티도 안 나고 보상도 없다는 게 억울하다. 그렇지 않은가. 회사는 나가서 책상 앞에 여덟 시간 앉아 있기만 해도 월급이 나오는데, 집안일은 내가 하루 종일 서서 일해도 아무도 모르고 월급도 안 나오는 게 부당하게 느껴질 정도랄까.
그래도 좋다. 아무리 티가 안 나도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내가 아니까. 집 안의 공기가 조금 가벼워졌고, 정갈하게 놓인 물건들에 마음이 편해진다. 무엇보다 집 안을 돌볼 여유가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다. 회사 다닐 때엔 없던 여유. 그땐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겨우 청소를 했고, 버려야 할 물건인 줄 알면서도 외면했다. 계절에 따라 옷과 이불을 바꾸는 건 또 왜 그리 버거운지, 계절의 변화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또 대청소를 하려면 주말에 해야 하는데 작고 소중한 내 주말을 청소에 양보할 수 없었다.
집 안을 돌보는 게 나를 돌보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보는 일에도 아무런 티가 안 나니까. 좀처럼 보상도 없는 일인데도 여유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똑같다. 그럼에도 내가 아니까, 그 감각이 좋아서 집 안도 나도 돌보게 된다.
퇴사를 하고 찾은 소중한 이 감각과 여유를 잃지 않도록 매일 집 안을 그리고 나를 돌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