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개운하다. 이 하루가 퍽 마음에 들었다.
친구 따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공간에 첫눈에 반했다. 그땐 3월이지만 눈이 내렸고, 마당에 쌓인 눈이 고즈넉함을 더해 아름다웠다. 안은 너무 뜨겁고 밖은 또 너무 차서, 안팎을 오가는 재미가 있었다. 춘천에 있는 ‘나무향기’라는 한증막이다.
6년 만에 이곳에 다시 왔다. 마침 나를 데려왔던 친구도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그만 두어 함께했다.
작은 대문을 지나 들어서면 펼쳐지는 정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멋 내기 용 같아 보이지만 큰 잉어가 여러 마리 살고 있다. 연못 중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입구로 들어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찜질복을 입고 한증막 문을 열었다. 어라, 아무것도 안 보여. 뜨거운 열기에 안경이 뿌옇게 변했다. 안경을 락커에 가져다 두고 다시 한증막에 들어갔다.
한증막을 할 수 있는 곳은 단 하나.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다. 열 명정도 들어갈 수 있으려나. 작은 조명 하나가 이 공간을 밝히고 있지만 그래도 꽤 어두워서 동굴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다 함께 약속을 한 것처럼 사람들은 크게 원 모양으로 둘러앉는다. 어두워서 그런지 아님 너무 더워서인지 사람들 간 대화는 거의 없다. 절에 모여 템플 스테이하며 묵언 수행하는 것 같다.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우리의 한증막 타임이 시작되었다. 양반 다리를 하고 등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눈을 감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다. 뜨거운 열에 압도당한 것이다. 모래시계를 보려 눈을 슬며시 떴는데, 한참 남았다. 시선이 내 팔뚝에 머물렀다. 조금씩 땀이 차오르는 게 눈에 보여 신기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미끄럼틀 타듯 내려와 코와 턱 끝에 맺혀 대롱거리다 낙하하기를 반복했다.
모래시계를 두 번 뒤집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마루에 누웠다. 한증막 덕분에 여름 바람도 마냥 시원했다. 넋 놓고 천장을 바라봤다. 안경을 쓰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는 만큼만 보자는 마음으로 눈에 힘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눈을 꿈뻑였다. 손으로는 나의 팔, 다리, 배를 천천히 짚어보며 말랑한 온기를 느꼈다. 이 모든 게 얼마만인지. 숏폼이며 유튜브 같은 영상과 여러 콘텐츠로 매일 내 눈을 자극하며 사는데, 마지막으로 고요하게 한 곳을 응시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또, 내 손이 운전대나 핸드폰을 만지는 게 아니라 내 몸을 만지며 살결에 집중하는 건 또 얼마만인지.
한증막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몇 번을 반복하고서야 샤워를 하고 나섰다. 이제는 집에 갈 시간. 몸도 마음도 개운하다. 이 하루가 퍽 마음에 들었다.
퇴사 후 나의 일상을 떠올렸다. 백수면 매일이 평안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혼자서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진로 고민에 풀이 죽고, 이런 무용한 글쓰기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며 의욕을 잃기도 했다. 나의 일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곳에 와야겠다. 한증막으로 땀나는 묵언 수행을 하고, 바람을 맞으며 멍 때리고, 핸드폰도 안경도 내려 놓고 고요히 한 곳만 바라봐야지. 그럼 몸과 마음이 곧 개운해질 테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