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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Jan 27. 2020

#22. 운전을 하며 깨달은 것들

나는 쪼랩 초보 운전자이다.

주말이면 차를 끌고 나간다. 부모님을 만나러, 남자친구를 만나러,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차를 끌고 나간다. 잔뜩 긴장한 채로 운전을 하면서도 이렇게 재밌는데 왜 진작 면허를 안 땄지, 라고 생각하는 나는 쪼랩 초보 운전자이다. 
 
 처음 운전을 시작하며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내비를 보는 일이었다. 내비 음성이 마치 영어 듣기 평가 같아 귀를 쫑긋 세워도 듣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몇 미터 앞 우회전이라는 표시에 거리가 가늠되지 않아 어려웠다. 이 차선에 있으면 내비가 가라는 대로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면 식은땀이 나는 듯했다. 띠디딩- 경로를 벗어났다는 내비의 경고음을 처음 들었을 땐 세상이 끝난 기분이었다. 이러다 영영 집에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내비는 내게 당황하지 말라는 듯 재빠르게 다시 경로를 찾아주었다. 당연히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고, 저 멀리 외딴곳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네비가 다시 찾아준 경로는 사실 그다지 어려운 경로도 아니었고,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들여 돌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인생이 스케치북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때가 있다.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다음 장으로 넘겨 새하얀 종이에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그릴 수 있는, 인생이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할 때면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고 실수를 하면 세상 끝난 절망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한두 번의 실수, 다시 말해 잠깐 경로를 벗어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없다. 운전하다 경로를 벗어났다고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왜 내가 바라는 일에 있어서는 한두 번의 경로 이탈을 가지고 나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려 했을까. 곧 다시 새로운 경로를 찾아 운전을 하면 되듯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아가면 될 일인데 말이다. 잠깐 경로를 벗어난다고 해도 어쨌든 나아가야 할 길 위에 내가 있는 건 분명하니까. 
 
 운전을 하다 보면 이럴 때도 있다.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 열심히 운전하지만 초행길에서는 더 긴장이 되어 안 그래도 못하는 운전을 더 못할 때가 있다. 그런 내가 답답한 건지, 아님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건지 나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차를 본다. 그러면 나는 내가 답답하게 운전을 했나 싶어 추월해서 지나간 차에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괜히 미운 마음이 들어 내 마음이 쪼그라들곤 했다. 그런데 나를 추월한 그 차를 이내 곧 다시 만나게 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럴 때면 괜히 고소한 마음이 들었다. 
 
 운전을 하며 나는 비교를 하고 있었다, 나를 앞질러 가는 차와. 운전을 하지 않을 때도 그랬다. 내 자신이 어떤 때는 남과의 비교로 뒤덮여 있는 콤플렉스 덩어리 같았다.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를 부러워했고, 능력 있는 직장 동료를 시기했다. 누군가의 연륜을 동경하면서도 또 누군가의 젊음을 탐내기도 했다. 끊임없이 남의 여유와 소유를 나 자신과 비교했다. 그런 생각이 운전할 때도 드러났던 것이다. 나를 추월한 차를 미워하고 미안해하다가 그 차를 다시 만나면 거봐, 그래 봤자 빨리 가지도 못한다고! 마음속으로 으스댔다. 경주를 하는 것이 아닌데, 가야 할 길을 안전하게 운전해 목적지에 이르기만 하면 될 일인데 쓸데없는 비교를 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난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데 뭘 그렇게 비교를 한단 말인가. 내가 원하는 삶을 재미있게 살아 나가기 위해 노력하며 살면 되는 일인데, 왜 자꾸 시선을 다른 데 돌려 비교하며 괴로워 한단 말인가. 


 운전하며 깨달은 생각을, 나는 시동을 끄면서 이런 생각을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글로 옮겨 놓기로 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또 나는 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또 경로 벗어나면 쉽게 좌절하고, 나보다 앞서가는 누군가를 보면 또 속상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이따금씩 이 글을 다시 읽어야지, 또 운전을 해야지. 그러면서 이 깨달음을 다시 곱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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