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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Nov 22. 2020

#30. 올해가 다 지났다.

도대체 나는 올해 무얼 한 거지

언제 이렇게 또 연말이 된 걸까. 시간만큼은 참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지나고 있었구나 싶다. 예전엔 연말이면 한 살 더 먹는 것에 집중했는데, 요즘은 올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며 반성하게 된다. 코로나를 핑계로, 결혼 준비를 핑계로 또 늘 그렇듯 회사 핑계로 무언갈 제대로 하지 않은 기분에 요즘 나는 좀 우울했다. 하지만 몇몇의 일상에서 내가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을 받기도 했다. 


14년 만에 <먼 북소리>를 다 읽었다. 21살 때 어느 잡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추천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아는 분과 한 달에 한 번 서로 책 선물을 했는데, <먼 북소리>를 선물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책은 생각보다 두꺼웠고, 추천 글과 달리 내게는 좀 지루했다. 그래서 그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내 방구석을 돌아다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다 몇 년 전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먼 북소리>를 보고는 구매했다. 읽어내야 한다는, 일종의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샀다. 다 읽지 못했던 기억때문인지 쉽게 책을 펴지 못하다 몇 달 전부터 꺼내 읽기 시작했다. 십여 년이 지난 뒤 읽는 <먼 북소리>는 그대로였다. 두꺼웠고 지루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요즘이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하는 일상이 부러웠고,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으려 노력했다. 성실하게 읽지는 못했고, 잠 못 드는 밤 한 두장씩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 읽었다. 특별하게 감명 받은 구절이라든가 내용 따위는 없었다. 다만 읽어냈다는 것에 기분이 꽤나 좋았다. 물론 그 책을 꼭 끝까지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다 읽고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 하고 싶다거나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언젠가 해내는 사람. 물론 마음을 먹고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말이다. 대학교 입학이 그랬고, 졸업이 그랬다. 광고가 그랬고, 여러 취업이 그랬다. 독립이 그랬고, 백수 생활이 그랬다. 이런 생각을 하니 올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책한 것에 위안이 되었다. 


얼마 전엔 클라이밍을 등록했다.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고, 작년에서야 겨우 원데이 클래스로 클라이밍을 해봤는데 정기 등록을 해서 다니고 싶었다. 이 생각을 품고만 있기를 무려 일년. 일년이 지나서야 등록을 했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이번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까지 일년이 걸렸지만 앞으로는 11개월, 10개월... 시간을 더 당겨가면서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참으로 힘이 나는 말이다. 


올해, 나는 회사 생활을 앞으로 5년만 더 하겠노라 다짐했다. 회사 생활을 졸업하고 나면 무엇을 할지 아직은 좀 막연한 상태.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하고 싶다거나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언젠가 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시간을 더 당길 수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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