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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Jan 12. 2021

#32. 내가 사랑하는 겨울 새벽의 풍경

같은 어둠이라면 점점 빛이 찾아드는 새벽의 어둠이 좋다.

새해가 될 때 마다 적어 내려가는 나의 위시 리스트에 꼭 들어 있는 것이 있다. 건강도 공부도 돈 모으기도 아닌 새벽 기상이다. 올해도 어김 없다. 


새벽에 일어나는 건 힘들다. 여름보다 겨울엔 특히. 새벽에 눈을 뜨면 어둡고 추워서 다시 잠들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겨울의 새벽 기상은 꽤나 매력적이어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매번 도전하게 한다. 


같은 어둠의 색이라면 나는 갈수록 짙어지는 한 밤 중의 어둠보다는 점점 빛이 찾아드는 새벽의 어둠이 좋다. 집을 옮기고 나서는 커다란 베란다 창 덕분에 밝아지는 모습을 한껏 볼 수 있다.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면 창 쪽으로 매트를 깔고 앉는다. 세상도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어둑어둑한 때, 요가를 하는 동안 세상의 색이 달라진다. 요가를 시작할 즈음엔 세상의 모든 것이 짙은 네이비 색으로 바래져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옅어지더니 하늘색으로, 그러다가 저 멀리서 빠알간 색이 하늘을 기웃거린다. 그러고는 세상의 모든 형체들이 자기 색을 찾아간다. 산, 도로, 집이 그제서야 자기 색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집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좀 묘하다. 왼쪽으로는 남한산성이 보이고 정면 멀리로는 갓 지어진 아파트가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아파트를 지을 용도인지 광활한 공터가 있다. 수직으로 아래를 보면 오래된 주택가와 좁은 골목길들이 촘촘하게 보인다. 자연, 도시와 동네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 풍경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언젠가 베란다에 있는 캠핑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구나. 풍경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는데 그 막연한 소망이 지금 나의 일상이 되었네, 하고 말이다. 


두 달 정도의 시간은 인간이 적응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어서 난 이 집 안의 풍경도 밖의 풍경도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하루 종일 집에 머물러 보기도 하고, 이 집에서 해와 구름, 비와 눈을 다 보기도 했으니. 별 감흥 없이 지내다 나의 바람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마주하는 풍경이 새롭게 보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풍경이 나의 바람이었다는 걸 기억해야지. 그리고 새벽을 기다려 이 풍경을 마주해야지,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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