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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Aug 15. 2021

#53. 8월 2주 차 일기

나중에 기억하려고 기록하는 짧은 일기

8월 9일 월요일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권장하는데 일이 많을 때면 회사로 출근한다. 코로나보다 일이 더 무서우니까. 그러다 모처럼 재택근무를 했다. 회사 노트북 챙기기 귀찮아서 개인 노트북으로 일했는데 화면이 작고 느려서 답답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유를 부리며 일했다. 저녁엔 남편과 시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요즘 저녁은 제법 선선해서 걷기에 딱 좋다.


8월 10일 화요일

회사에서 대표님 리뷰할 게 있었는데 무쪼록 잘 끝나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퇴근할 때 좀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에 힘들었다. 아무래도 클라이밍 가기 싫어서 꾀병이 났던 거 같다. 클라이밍 다녀오니 씻은 듯이 나았다는 해피 엔딩….그리곤 집에서 말복 기념으로 족발을 먹었다. 맛있더라. 남편이 마늘 족발을 시켜놔서 얼마 전에 마늘 족발을 찬양하던 수가 생각났던 밤.


8월 11일 수요일

수요일은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 날. 최근에 내가 퇴근이 늦어 계속 남편 혼자 분리수거를 했는데 모처럼 같이 했네. 글도 쓰고 자수도 좀 하려고 했는데 샤워도 안하고 잠들었다. 계절이 바뀌려고 그러나… 요즘 잠이 너무 쏟아진다.


8월 12일 목요일

처음으로 남편과 같이 재택한 날. 여태 남편도 그렇고 나도 재택을 왕왕 했는데 같이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오전엔 건강검진 받으러 남편은 병원 가고, 오후엔 내가 좀 널널하게 일을 해서 같이 일하는 기분이 별로 안 났다. 일 처리할 게 조금 있는 주말 느낌에 가까웠지. 이날도 퇴근 후에 클라이밍 하러 갔다. 센터 위치가 애매해서 차를 끌고 가는데 요때 기분이 참 좋다. 가볍게 드라이브하고 운동도 하고. 하이 스텝이라는 걸 배웠는데 다른 사람들이 곧잘 하길래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너무나 별거였다. 왜 나만 안 되는 거지… 수업 끝나고 혼자 연습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도와주면서 요 느낌이에요 아시겠죠,라고 물었는데 사실 하나도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잘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도망치듯 센터를 빠져나왔다.


8월 13일 금요일

어제 클라이밍 수업 때 배운 하이 스텝을 마스터하고 싶어서 퇴근 후에 클라이밍 센터에 갔다. 왜 센터 앞에 택배가 쌓여있지 했는데 오늘 정기휴무네. 이 공지를 어제도 보고, 카톡으로도 친절하게 알려줘서 분명 봤는데 왜 그게 오늘이라고 생각을 못했지. 실망한 채로 돌아와 집에서 몸져누워있다가 친구와 급 만났다, 우리 집에서. 난 분명 술을 안 먹겠다고 했는데 사이좋게 맥주 두 캔씩 먹었네.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똥 방구 에피소드뿐.


8월 14일 토요일

어젯밤 퇴근한 남편이 카레를 먹고싶다고 한 게 생각나 아침에 부지런히 카레를 만들었다.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회사에 데려다줬다. 사실 데려다 준 건 아니지. 운전은 남편이 했고 나는 동행을 했을 뿐이니까. 남편이 내리고 난 뒤 차를 내가 다시 끌고 온건데 뭐 어찌 됐든 남편도 내가 데려다 줬다고 말하니까 내가 데려다 준 걸로 쳐야지, 헷. 오랜만에 동생 만나러 갔다. 또 수술한다는 말에 속상해서 울 뻔했는데 똥꼬 수술 얘기를 너무 적나라하게 해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동생이 만들어준 삼계탕 먹고 실컷 티비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이 시원해서 오랜만에 베란다 캠핑장에 앉아 책을 읽었다.


8월 15일 일요일

오늘도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남편을 회사에 데려다줬다. 그리고 혼자 커피숍에 갔다. 얼마 전부터 가보고 싶은 커피숍이 있었는데 지리 감각이 전혀 없는 나는 도대체 어느 동네에 있는 커피숍인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웬걸, 클라이밍 센터 바로 옆에 있었다. 호호.

원래는 이번 주에 부모님 만나러 완도에 가려고 했는데 남편의 주말 출근으로 무산. 뭘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내게, 후룽이가 원데이 클래스 한 번 들어 보라고 추천을 했다. 그래서 오후에는 팔찌 만드는 클래스에 다녀왔다. 팔찌 두 개를 만들었고, 하나는 원데이 클래스 아이디어를 준 후룽에게 선물해야지 생각했다. 뭐 그렇다고 오늘 만나서 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오늘 만났고 걔가 내 속을 알고 있던 건 아니었을 텐데 당당하게 팔찌 하나를 달라고 했다. 그말을 들으니 어쩐지 주기 싫었지만 주었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다시 뺏고 싶었다. 같이 드라이브를 하고 미사리 가서 커피 마셨다.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방구 에피소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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