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장짜리 생활기록부 하나가 불러온 다양한 기억과 감상들
다시 한번 느꼈다.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기록이 많은 기억을 불러온다는 것도.
업무를 얼추 마친 금요일 오후. 어떤 아이디어를 고민하다 ‘생활기록부’라는 워딩이 떠올랐다. 그러자 언젠가 생활기록부를 발급해 볼 수 있다고 한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급 궁금해져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발급했다.
우연히 찾은 지난 애인의 편지를 펼칠 때처럼 무슨 내용이 있나 궁금한 마음으로. 그러면서 안 좋은 내용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옅게 드리운 두려운 마음으로.
어떤 건 기억에 없던 기록이었다. 또 어떤 기록은 기억과 일치하기도 전혀 다르기도 했다. 교과 우수상 수상은 내 기억에 없던 기록이다. 학교 생활 중 수상 경험이 한 번도 없다 생각했는데, 이런 상을 받았었네. 그냥 전교생한테 주는 상이 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없다. 그래도 상을 받았었다니 괜히 으쓱하다.
기억과 일치했던 건 출결과 성적. 먼저 출결은 기억대로 개근 기록이 없다. 매 학년마다 결석을 했고, 사유는 감기 몸살이었다. 어릴 적부터 곧잘 아팠네. 성적은 기억과 그 시절의 내 모습과 일치했다. 진학하기 싫었던 인문계 고등학교에 끌려가듯이 입학한 1학년, 성적은 개판 오 분 전. 미/양/가가 성적표를 점령했다. 2학년은 회복기였고, 3학년 때는 대체로 우수했다. 이건 2학년 말, 내가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2학년 늦가을, 3학년 선배들의 수능날에 뉴스 기사를 봤다. 수능이 어려워 몇몇 수험생이 수능을 포기하고 수험장을 나왔다는 기사였다. 섬뜩했다. 이게 내년의 내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에. X됐네.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목표를 세웠다. 나의 목표는 탈부산 인서울. 광고홍보학과로 진로를 정한 건 언젠가 보았던 광고 서적이 재밌어 나도 저런 일 해볼래 라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기억과 전혀 다른 기록도 있었다. 바로 장래희망. 교사나 공무원이라고 기재돼 있더라. 교사라고 쓴 건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난(?)해 보이려고 쓴 것 같은데, 공무원?? 제가요? 한 번도 관심이 간 적이 없던 분야인데. 이건 내가 대충 썼거나 선생님이 대충 썼거나 둘 중 하나인 듯.
재미있는 건 각 학년 담임 선생님의 코멘트. 담임 선생님의 성향과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무심했던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무에게나 써도 무방할 코멘트를 남겼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은 꽤나 솔직한 마음을 남긴 것 같다. 그때 나는 지각도 많이하고 야자도 많이 째고, 혼날 때도 자기 주장은 다했었는데, 그걸 집약해서 써놓은 느낌이었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의 코멘트는 조금 의외였다. 사이가 가장 안좋았는데 객관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한 느낌이었달까. 도덕 선생님이셨는데, 그래서 인지 정직하게 쓴 것 같다. 나 같으면 미워하는 마음을 꾹꾹 담아 썼을 텐데.
한 편 한 학년, 일년동안의 나를 한 줄로 코멘트를 하는게 마땅한가 싶었다. 또 좋은 말로 넘쳐나지 않는 걸 보면 내가 정말 좋은 아이는 아니었나 싶고, 선생님들은 이걸 쓰느라 또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나 싶다.
생활기록부를 보며 많은 기억이 스쳤다. 심심찮게 선생님께 반항했던 기억, 야자 째고 친구들과 천원씩 모아 갔던 오렌지노래연습장,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순간, 영안실처럼 느껴지던 교무실의 어느 풍경, 코 박고 공부하던 내 책상, 언젠가 책상에 적어두었던 ‘최대한의 자유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 공부’라는 글귀, 고등학교 로고, 실내화 대신 신었던 바퀴벌레 같이 생긴 덧신, 영자신문부 기사를 번역기 돌렸다가 선배들한테 불려간 거. 급식비 삥땅 치려고 팠던 급식 도장. 어떤 때는 암담했고 어떤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또 어떤 때는 처절하다가 그냥 신나던 기억. 그떄의 내가 이해가 되다가도 안되고, 안쓰럽다가도 뭐 이런 애가 있나 싶고, 웃기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의 생활을 열심히 기록해야겠다. 석장짜리 생활기록부 하나가 불러온 다양한 기억과 감상들이 이렇게 재밌는데, 지금의 생활기록을 잘해두면 나중에 더 재밌겠지라는 기대가 되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