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떠나는 용기보다 남편의 동의가 더 대단해 보였을까.
결혼 후 내게 달라진 점이 있다. 이전 같으면 주저하고 쉽게 포기했을 일들을 해나간다는 것. 작고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머리를 길러 히피펌을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물론 이건 좀 인내가 필요하고 신중한 일이라 작고 사소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자차로 출근을 하는 것도 그렇다. 나는... 알게 모르게 효율을 좀 많이 따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차로 출근하는 게 비용이나 시간으로 봤을 때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나 효율이 문제냐 내가 출퇴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느냐가 중허지, 하면서 매일 같이 차를 끌고 여의도에 갔다. 피아노도 빼놓을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배우고 싶지만 망설이기만 했다. 이제 와서 피아니스트가 될 것도 아니고, 내 만족감을 위해서 매달 학원비를 내고 매주 학원에 간다고? 당근으로 구매하긴 했지만 전자 피아노까지 집에 들였다고? 과거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결혼 전에 주어졌다면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시간과 비용을 잘게 잘게 쪼갰을 것 같다. 한 주는 제주도, 한 주는 해외여행, 한 주는 친구들과 시간 보내기 등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게 좀 더 효율적이고, 나에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결혼하고 이처럼 달라졌을까. 한참을 생각해 보니 이렇게 정리가 되었다. 결혼한 여성의 삶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 결혼을 했으니 남편에게 의지하고, 또는 좀 더 차분하게 살며, 또 나의 니즈나 만족보다는 ‘가정적인’ 일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 고정관념이 있었다. 누가 내게 이런 생각을 직접적으로 심은 건 아니고 여태껏 살며 내가 체득해 버린 나의 고정관념인 것 같다.
한 달간 여행을 간다고 말하면 종종 이런 질문이 되돌아왔다.
- 남편이 허락해 주던가요?
남편과 상의를 할 일이긴 하지만 허락을 구해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그 질문을 받을 때면 당혹스러웠다. 남편이 오히려 좋아하는데요, 라며 가볍게 넘겨 버리려고 하면 이런 답이 돌아왔다.
- 남편이 정말 대단하네요.
물론 나야 남편에게 고맙고 든든한, 여러 감정을 느끼기는 하는데, 남들이 보기에… 왜 남편이 대단한 거지. 한 달간 떠나 있는 내가 대단한 거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어떤 사람들은 떠나는 ‘나의 용기’보다 ‘남편의 허락(?)’에 더 집중하고, 그것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더라. 어쩌면 결혼한 여성의 삶에 고정관념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체득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남편은 내가 여행 얘기를 꺼내었을 때, ‘허락’ 대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닌 만큼 무조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행에 막막해할 때면 여러 방법으로 나를 도왔다. 이탈리아로 정했을 때 함께 책을 사러 가고, 또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미처 내가 챙기지 못한 것들을 그가 준비해 주었고, 첫 장시간 비행인데 힘들면 안 된다고 비행기 편도 알아보고 결제해 주었다.
결혼 생활, 혹은 결혼 후 여성의 삶에 갖고 있는 나의 고정관념을 사실상 남편이 함께 허물고 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고민을 해보되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하라고, 그게 맞다고. 나중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있으니 지금 하라고.
참 다행이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얄 할 사람이 이런 마음으로 항상 날 응원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