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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Mar 13. 2023

#78. 카타니아 공항에서 <라라랜드>OST를 연주했다

어쩌면 라라랜드처럼 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고민 없이 답할 수 있다. <라라랜드>라고. 지금까지 수십 번은 본 것 같다.


서로의 꿈을 나누는 사랑 이야기가 좋고, 헤어져도 꿈을 응원해 줄 수 있는 그 사랑이 좋다.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며 이별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좋고, 다 지나서 우리가 그때 그랬더라면 과거를 다시 꿈꿔보는 장면도 좋다.


무엇보다 <city of stars> 곡을 너무 좋아한다. 따라 부르고 싶은 마음에  가사를 써서 외우기도 했다. 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이곡을 제일 먼저 배웠다.  <라라랜드>는 나를 팝송을 외우게 하고, 피아노를 배우게도 만들었다. 이게 내게 벅찬 행복감을 준다.


언젠가 혼자 제주에서 운전을 하는데 <city of stars>가 나와서 창문을 열고, 볼륨을 높이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또 며칠 전 바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랬다. 낯선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곡을 들으며 노래를 부르는 게 재미있고 행복했다.


어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카타니아 공항에서 피렌체로 가는 비행기가 5시가 지연이 되었다. 책도 읽고 sns도 하고 뉴스도 봤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돌아다니며 얼핏 보았던 피아노가 생각이 났다. <city of stars>를 한 번 쳐보고 싶었다. 몇 주 피아노 좀 안쳤다고 다 까먹어서 인터넷에 악보를 검색했다. 호기롭게 피아노 앞에 앉았다. 갑자기 옆에 있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자신의 하모니카를 보여주면서 G코드로 연주해 달라고 했다. 저기 아저씨 제가 그렇게 주문을 받아서 피아노를 쳐줄 수 있는 레벨은 아니지만 다행히 이곡은 Gm코드랍니다, 속으로 대답하고 피아노를 쳤다. 기억도 안 나고 긴장도 되고 악보도 잘 안 보여서 곡을 다 치지도 못했다. 건반에서 손을 떼니 아저씨가 계속 치라는 식으로 말하는 걸 사양하고 일어났다.


기분이 묘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데 괜히 긴장이 되기도 했고, 낯선 이국의 공항에서 피아노를 칠 생각을 하다니 나 자신이 신기했다. 이 지루한 공항에서 내가 좋아하는 곡을 내가 연주해서 들으니 괜히 벅차기도 했다.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여행지라서 용감해진 건지 모르겠다.


또 며칠 전엔 좀 우울해서 와인을 마시며 <라라랜드>를 봤다. 처음엔 이 영화를 산본 영화관에서 봤고. 언젠가 포항으로 여행 갈 때 버스에서 봤고, 자취할 때 수없이 봤고, 결혼하고는 신혼집에서 남편과도 봤던 이 영화를 이탈리아에서도 보다니. 이 영화를 여행할 때마다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스페인에서 또 언젠가는 부산에서, 체코에서.


그러면서 내 인생은 이제 <라라랜드>가 다 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매일 같이 부르고 연주하는 <city of stars>를 여행지에서도 반복하고, 이젠 좀 감흥 없을 법한 이 영화를 모든 여행지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어쩌면 <라라랜드>처럼 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꿈을 나누고 응원하면서. 이미 헤어진 여러 사람들의 꿈도 응원하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하기보다는 흘러 보내면서. 또 가끔은 은 그때 그랬으면 어떨까 과거를 다시 꿈꿔 보면서.


그래,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영어 이름을 지을 때도 <라라랜드> 여주인공의 이름으로 정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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