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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Apr 03. 2023

순간을 믿어요_이석원

 

뭐든 당연해진다는 건 그렇게나 무서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층간 소음이란 녀석은 늘 그랬다. 어느날 나를 괴롭히던 소리가 사라져 내가 사는 집 안이 비로소 사막처럼 고요해지더라도, 내가 느끼는 해뱅감과 행복감은 늘 아주 잠시뿐이었다. 왜냐하면 조용함은 곧 일상이 되어 무뎌지고 익숙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게 사라지면 드는 행복감은 잠시뿐인데 그게 다시금 존재감을 드러낼 때 사람이 받는 고통은 잠시도 어디로 사라지거나 줄지를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비밀을 지켜주는 일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데 말이다.


근데 있지,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더 나은 삶을 위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어. 그게 문제야.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이 세상엔 너무 많거든.


다들 아는 얘기다 했지만 다들 아는 정보가 나에게는 없었으므로 친구가 제공한 정보는 나를 살릴 만큼 유용했던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살면서 경험하는 세상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도 동의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인생은 결코 거기서 거기가 아니며 경우에(사람에) 따라서는 제법 큰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해서 서른셋이 되기도 전에 벌써 오대양 육대주를 다 가본 사람을 안다. 그것도 자기가 직접 번 돈으로. 반면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해 마흔이 넘도록 제주도에 한 번 가본 것이 여행의 전부인 친구도 있다. 누구의 삶이 더 낫고 누구의 삶이 정답인지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단지 다를 거라는 것. 추측건대 두 사람의 삶의 경험의 폭과 사유의 차이가 분명 있을 거라는 것.


누구든 나보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도 있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테지만, 중요한 것은 내 처지가 어떻든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을 남과의 비교를 통해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누가 나보다 돈이 많고 힘이 있다고 해서 나보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보다는 ‘남이 행복하건 말건 난 나대로 행복해’가 더 건강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비교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으며 나대로의 삶을 사는 것이지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없을 거라고 믿는 게 아니라는 것.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하다는 믿음은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배타적인 마음이 아니라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내 삶에 만족한다는 긍정적인 믿음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것.


나는 오로지 나로서 행복하면 그만이기에.


완벽하다, 라는 네 글자만큼 불완전하고도 불길한 단어가 없다는 걸.


내겐 마치 그 정적이 내가 무능해서 찾아온 것 같은 죄책감이 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쩐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부끄러운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마치 방금 가른 수박속처럼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나는 집에서 영화나 책을 보다가가 너무 좋은 대목을 만나면 그 순간 책을 덮거나 보던 티브이를 꺼버린다.아까워서. 이 좋은 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하지만 일시 정지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그런 좋은 순간과 맞닥뜨릴 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아마도 사람들은 그래서 술을 마시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거겠지.   


한데, 막상 또다시 의도치 않게 누군가 좋아져서 이렇게 서로의 마음과 관심사를 나누는 사람이 생겼을 때의 이 충만감, 어떤 합일감, 한마디로 정서적 안정감이 내가 홀로 보낸 어떤 시간에서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라 나는 좌절했던 것이다.
왜.
타인으로부터 받는 이 모든 것은 유한적이므로, 언제고 관계가 끝나면 그 모든 것도 함께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이 지극했던 마음이 옅어지고… 서로에게 등을 기대는 일도 줄었고 서로의 존재가 익숙해지고…그래서 소중한 줄 모르게 되고…그러다 마음이 점차 무뎌지다 소멸하고…끝내는 새로운 존재가 눈에 들어오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게 되는 이런 일들. 이제 나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데…그만하고 싶은데… 그것이 바로 사랑과 두려움이 동의어인 한 사람의 고민이자 곧 우리 관계의 시작이었다.


뭔가 좋다는 표현을 너무 격하게 하는 사람은 조금 경계하게 된다.
뭐든 싫어하는 마음도 그만큼 클 것 같아서.   


늘 많은 말을 주고받는 사이라도
진짜 대화가 필요한 순간은 얼마든지 온다.   


그 냉면은 더 이상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그리운 음식이 아니라 돈만 내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흔한 메뉴가 되어버린 탓도 컸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였다는 것.


봐라. 너는 내가 너를 ‘도와주는’ 동안 너의 목숨이 위태로웠다고만 생각했지 네가 영화를 보는 그 순간의 행복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감사해본 적이 없지 않냐고.


내가 믿어야 했던 것은 반드시 찾아올 ‘끝’이 아니라 그 모든 지금, 바로 ‘순간’들이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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