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가?

일상을리뷰

by Vintage app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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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라는 말은 살다보면 어디선가 듣는 내용이긴 하다. 그런데 내면의 세계를 표출하는 것이 대부분의 크리에이터(창작자)들의 행위이긴 하지만, 유독 “글”에 있어서는 “나의 이야기”가 강조되는 것 같다. 음악, 미술, 기타 영역에서보다 두들어지게 언급될 때마다 “왜?”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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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희열을 느낀다." 라는 전제가 성립된다면 나같은 경우는 [글을 쓰는 작가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나는 정보와 컨텐츠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해 희열을 느낀다. 결국, Tech writer가 어울리며 실제로도 작가라는 말보다는 “필자”, “저자”라는 용어에 익숙하다(공학, 기술, 학술서적 분야에서 작가라는 호칭은 흔치않다).




□ 과거의 기억 17년전

“청량리에서 만난 노년의 아저씨”


17년 전인가? 남이섬을 마눌님과 같이 가려고 청량리역에서 내렸다. 그 때, 역전에서 어떤 노년의 신사분께서 가방을 뒤에 매고 무엇인가를 나누어주고 계셨다. 무심코 지나가려했지만 신사분께서는 나를 보더니 바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제가 OO학교에서 정년퇴직한 사람인데 저의 인생을 책을 하나 썼습니다. 나누어 드릴터이니 시간되며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대충 위와 같은 말씀이었던 것 같다. 외모가 주는 삶의 풍파에서 나름 품격이 느껴졌기에 웃으면서 받았고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면서 남이섬으로 가는동안 책의 존재를 잊고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혼이고 울 마눌님이 캘베로스로 진화되기 전이었기에 마눌님과 노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읽어보았는 데, 나름 배운것도 많고 생각도 바른 삶을 사신 분 같았다.

초반에는 자신의 자라온 인생을 쓰셨기에 스토리 텔링도 되고 "독자의 주목"을 끌었지만 나중에 갈 수록 필체가 달라졌다. 자신의 스토리가 아닌 사고방식, 감성을 정리하는 방법이 서툴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보니 끝까지 읽기는 힘들었다. 출판업계 친구들과 가끔 이야기하는 말이지만 "글쓰기와 책쓰기"는 엄연히 틀리다. 그 책도 제목, 표지, 목차, 필체관리(일관적)에 있어서 총체적 난국이 었다. 명문대 교수를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그럼에도 책쓰기는 전문가의 손길을 전혀 거치지 않은 티가 났다.

자가출판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표지, 편집, 교정은 전무였다.

독자배려가 전혀없었다.


너무 자신에 집중하며 쓴 글로
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아픔의 공유인가?”

“즐거움의 공유인가?”

“삶을 인정받고 싶어서인가?”


위의 내용 전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수필이라는 장르에서 "나의 경험"이 빠지면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그리고 수필이라는 장르를 읽는 이유가 "사람과 삶"이건만 저자의 삶과 인생이 없다면 상상하기 힘든 수필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삶에서 느끼는 희노애락을 꾸욱꾸욱 넣어버리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문제가 있다면 다른 장르에 비해 수필은 "1번재 독자를 자신"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나친 자기애가 발생되고 타인이 읽기에는 불친절한 글이 나올 때가 많다.


□ 넘치는 "내 인생 글쓰기" 시장


”자신을 위한 글쓰기 강의 시장이 넘친다”,

“정부지원 평생교육원조차 80%가 그런 시장이다”

“만족도도 제일 높다”


위의 3단계 정의는 30대 초반에 공학박사를 획득한 직장후배가 한 말이다(지금은 40대 중반이고 외모는 50대를...). 공학계열의 사람들도 정부의 포럼이나 강의를 종종 나간다. 여러가지 이유이겠지만 "브랜딩" 차원에서 필요할 때가 많다. 그런 것을 잘하는 친구가 작년에 한 말이 "강의로 먹고살려면 공학박사 따위는 필요없어요, 지자체의 평생교육원 프로그램 보면 모두가 자기인생으로 책낸 사람들이에요, 그것으로 강의하면서 먹고사는 데, 수강생 만족도가 엄청 좋아요...."


이런 말을 듣고있다보니 뭔가 깨달음을 얻었었다. 그래서 이것으로(일반인 대상 인생수업) 한 번 해봐야 하지않겠냐고 후배에게 말했더니 "OO님과 저는 절대로 못가는 영역인거 아시지요? 공돌이들이 수필쓰면 논문이 나와요...특히 OO님은...싸이ㅋ패ㅅ..스릴러.."라는 말을 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도 강의를 800시간 이상했고 나역시 400넘는 시간을 강의했던 경험으로 보건데 "내 이야기로 감동"을 주는 능력은 없다(반대로 반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 심지어 내 이야기를 쓰고 싶지도 않다. 결국 "내 인생 글쓰기 시장"은 우리같은 "로직충만 공돌이"들은 처다볼 영역은 아닌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다. 시장의 파이가 무척 큰 것을 알고나서부터 "그들의 글쓰기"도 주위깊게 보며 학습하고 있다.


□ 크리에이터는 “나”만 소재로 할 수 있을까?


1사람의 노동력으로 할 수 있는 한계치가 있다

나를 소재로 한 창작은 바로 밑바닥을 들어낼 수 밖에 없다.


"인생도 한 번, 인생 글도 한 번"

그러면 인생을 소재로 작품을 쓰면 1~2편 이상은 무리라는 이야기이다. 사람에 따라 더 쓸 수도 있겠지만 작가인 자신조차 지겨워질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크리에이터가 되려고 한다면 “나”를 벗어나야 한다. 물론 “나를 소재로 한 멋진 글은 많다”. 단지 꾸준함을 생각한다면 "나"라는 소재는 너무 빈약한 재료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모든 업종들은 "꾸준함과 많음"을 통해 전문가로 성장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객관성"을 얻어가며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결국 작가라는 타이틀을 아마추어에서 "전문가"영역으로 옮기고 싶다면 "나라는 소재"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_0edb235b-1392-46f6-ae30-583ee97fde49.jpg bing : prompt [water painting "writer in the d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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