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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tage appMaker Aug 04. 2023

가진 것에 열광하는 병든사회

연쇄긍정마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치있는 사람이 되려고 힘써라
- 알버트 아인슈타인


[사회적 가치]가 중요한 적이 있었을까?


며칠 전 80대 중반의 아버지와 최근 정치상황과 신림동 묻지마 살인사건을 이야기했다.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 입에서 "학력사회"의 문제점이 언급되었다. 귀를 의심했었다. 3대 공립(서울, 경기, 경복)과 서울대가 아닌 출신들에게 뼛속까지 차별을 하셨던 분께서 "우리 때도 인성교육 따위는 없었어. 다들 누군가를 짓누르고 가오잡느라 바빴지. 그러니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일꺼야.."라는 말을 하셨다.


아버지에게 학벌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패배자들의 넋두리였기에 평생 부정적인 말을하지 않고 살았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이어지는 대화가 신기했었다. 나이가 드셨으니 솔직해지신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만 했을 뿐이다.


...


아버지가 했던 말 중 머리 속에 남는 말이 있다.

"너랑 나랑은 누군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 묻지마 범죄같은 일본스러운 엽기사건들은 당연한 결과야..우리는 일본을 따라갈거야.." 라는 말이었다.


나는 "더불어 사는 법"을 알지 못한다


경쟁 이후 새로운 경쟁. 그리고 이너서클을 만들고 경쟁그룹들을 눌러버리는 방법에만 몰두하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공존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빨빠진 육식동물 꼴이 되어보니 "내가 얼마나 공존에 무식한 지"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수 년이 지나는 동안 "공존"을 목표로 사람들과 협의했지만 "우리모두가 능력부족"임을 깨달을 때가 많았다.


기다려야 할 때
포기해야 할 때
나누어야 할 때
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않았다.


다들 자기 몫에만  buff 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뭉치지 못하고 “혼자서 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일본과 중국을 감정적으로 미워하지만 그들에게 “우리”라는 개념은 실질적인 “공공의 이익”이다. 그런 점은 배워야 하지않나 싶다. 각자도생으로 살아온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관념처럼 느껴지는 것들이겠지만 말이다.


"남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는 사람들


조직이 되었던, 가족이 되었던 자신의 능력과 욕망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할 일만 열심히 했던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그런 이름없는 사람들”에게 1도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다. 남들에게 잘나보이는 가오만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 사회가 증오스러울 때가 있었다. 멋진 가오가 있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며 이성을 잃어버린다. 팬덤이 생기고 편가르기가 생기며 “상식”은 사라져갔다. “저런 사람들은 그래도 된다”라는 황당한 말로 알아서 호구가 되어주는 공범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위선과 착취를 용납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나 또한 가오있는 인맥을 적극 활용하며 살아왔기에 자유스러울 수 없었다는 것이  싫었다. 단지 이름없는 주위의 영웅들(가족과 조직에 희생하는)에게 존경의 표시를 하는 것으로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기에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 워커보다 스타워즈의 로그원에서 이름모를 영웅들에게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모두가 서로에게 공포를 조장했다


어린시절부터 누군가와 비교되고 강요되며 패배감을 맛보게 하는 "공포마케팅"으로 교육받았다. 그리고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온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조만간 대은퇴의 시대를 맛보게 된다. 평생 경쟁과 가진 것에 노예였던 우리세대도 억울한 세월에 분노하며 삶을 비관적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강력한 공포마케팅과 인생착취를 당한 20~30대의 모습들을 보며 그나마 우리가 복받은 세대였음을 깨닫는다.


지금의 20~30 대에게는
희망보다 좌절만 가득 했을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이미 우리에게 시작되었는 지도 모른다.


그들의 분노를 우리가 알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모방범죄가 유행처럼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그들의 분노수준을 상상할 수 있다. 국뽕에 취해 우리의 치부를 보지 못하는 바보짓을 하면 안된다고 본다. 병든 사회를 고칠 골든타임이 있는지 조차 모르겠으나 병듦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암울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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