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
마누라가 올해만, 3번의 제주여행을 다녀왔다.
그러나 여행다운 여행은 친구랑 간 것이라 생각된다.
마누라라고 쓰거나 말하면 몇몇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그럴 때마다 한 마디 한다.
아줌마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대외적으로 마누라라고 호칭할 뿐, "오빠"와 "OO"로 불린다.
1.
집 안마다 호칭은 가지각색이다.
울 마누라는 20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빠라고 나를 호칭하고 있다.
나는 타인이 들으면 분노조절 안 되는 애칭으로
연애기간 동안 OO(=마누라)를 호칭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이름이나 기타 용어(존칭어)로 호칭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연애 때 애칭이 좋으나
지금 우리 딸내미가 들으면
분노의 일격을 가할 듯해서 머릿속에서 지운 지 오래다.
그러나 마누라라는 호칭이 공식화된 것은 아마도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2010) 같다.
고유명사인 이름보다 검색 용의 한 보편적인 단어를
생각하다 보니 마누라가 제일 적합했고,
그 이후에 Google 계정 동기화를 통해
십 수년간 사용하고 있다.
마누라가 왠지 더 존중의 뜻 같이 느껴진다.
2.
와이프?(왠지 외국 여자에 대한 로망 같아서..)
집사람?(차라리 눈사람이 더 정감 있지 않나?..)
보다는 마누라가 있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국립국어원에서도 마누라는 극존칭어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런 내용을 미리 알고
마누라로 호칭하는 것은 아니었다.
https://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25657
마누라로 호칭을 하다 보면
왠지 의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누라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마누라가 왜 저러는지
생각하게 된다.
유교적 세뇌일지도 모르겠다.
같이 살다 보니 존중하게 된다
3.
마누라가 가정에 잘했나 못했나를 떠나서
나와 함께한 수십 년 시간에 Respect를 보낸다.
나 같은 하드코어 한 성격의 사람을
웃으며 받아줄 수 있는 것은
마누라의 경상도 상남자 같은 포스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입장을 바꾸어 역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마누라에게 미안한 감정이 많다.
서로가 삶에서 포기한 것이
많다 한 들, 여자이기에 받는
서러움과 스트레스는
무게가 다르다고 본다.
나만 미안한 것은 아닌가 보다.
4.
며칠 전
업무 미팅을 갔다.
명함만 보아도
슈퍼 로봇대전(학벌, 경력, 인맥 등등)에 나올 듯한
프로필의 사람들이랑
인사이트(???) 넘치는
비즈니스 용어로 공방전을 한 후,
소모된 정신력만큼의 배고픔을 달래려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30분 전 업무로 각을 세웠던 모습은
사라졌다.
다들 마누라 눈치 보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을 했다.
누가 더 가족과 마누라에 충성인지로 랩 배틀을
하는 모습을 보니,
세상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여하튼,
우리 시대 남자는
자기 마누라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는 것이
default인가 보다.